아이돌이 아프다. 최근 들어 내적·외적인 병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만 10명 남짓이다.
지난 4일에는 크레용팝 소율(26)이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했고, 12일에는 위너의 남태현(22)이 심리적인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쪽은 12일 공식입장을 내어 “남태현이 연습생 시절부터 앓고 있던 심리적 건강 문제가 지난 몇 달간 매우 안 좋아졌다”고 했다. 지난 8월에는 오마이걸 진이(21)가 거식증 증세로 활동 중단을 알렸다.
신체적인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4월 오마이걸 승희(20)가 과호흡증후군으로 실신해 응급실에 긴급 이송됐고, 지난 11일에는 엑소 레이(25)가 수면 부족으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실신했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이엑스아이디 하니(24)와 걸스데이 혜리(22)가 각각 피로 누적으로 인한 장염과 뇌수막염으로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이경규, 김구라 등 최근 3년 사이 공황장애라고 고백한 연예인이 20명 정도인 것에 견주면, 아이돌의 발병 빈도는 잦은 편이다.
많은 아이돌이 몸과 마음의 병을 앓는 현실은 대한민국 아이돌 시스템의 현주소를 말해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가 펴낸 <아이돌 연감 2015>를 보면, 지난해 데뷔한 아이돌만 총 60팀, 324명이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인지도를 쌓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다”고 한 연예인 매니저는 말했다.
실제 아픈 아이돌들은 데뷔 1~5년차에 집중돼 있다. 2015년 데뷔한 여자친구는 데뷔 이후 큰 휴식 없이 신곡을 내고 활동했다. 멤버 엄지는 좌측 대퇴부 봉공근 염좌다. 걷거나 무릎을 움직일 때 사용되는 근육에 무리가 간 것이다. 한 연예인 매니저는 “데뷔 5년차까지는 기획사 스케줄에 따라 개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불규칙한 생활에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는 건 기본이다.
마음의 병 또한 아이돌 생태계와 관련돼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중에 노출되는 창구가 많고, 사소한 일에도 악플 등이 쏟아지는 상황을 아직 어린 아이돌들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날씬한 몸매 등 아이돌을 관음적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후유증을 낳는다. 지상파의 한 예능 피디는 “오마이걸 진이의 거식증은 충격이었다. 비슷한 아이돌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숙소에서 매일 아침 저녁 몸무게를 검사하는 식의 강압적인 감시 역시 스트레스로 작용된다. 또다른 기획사의 매니저는 “단체생활 시스템에 따른 통제와 갈등이 마음의 병을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기획사들은 대부분 소속 연예인들이 원할 경우 정신과 상담을 연결해주고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식으로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에프엔씨 쪽은 “연습생 시절부터 힐링 프로그램을 마련해 정기적으로 모든 연습생을 상대로 강의도 듣게 한다”고 했다. 데뷔 연령대가 낮아지고, 아이돌 그룹이 늘면서는 기획사들도 더 신경쓰는 모양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연예인들의 건강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관리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특히 인기가 높은 아이돌일수록, 시선이 신경쓰여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우 또한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1년 대중문화예술인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정신상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연예인 심리상담은 2011년 40건에서 2013년 107건으로 꾸준히 늘었지만, 소문이 두려워 선뜻 병원을 찾는 이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한 배우는 “상담을 받고 싶어도 비밀이 지켜질까 꺼려지게 되는데, 노출이 잦은 아이돌들은 더 그럴 것”이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건강검진 역시, 아직 어린 아이돌들이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근 연예계 데뷔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추세인 만큼, 좀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승욱 심리상담분석가는 “위태로운 순간에 도움을 청하는 데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속사 차원에서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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