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는 남자들이 사랑받는 <질투의 화신>. 에스비에스 제공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는 말했다. “질투는 여자의 가슴속에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이라고. 이 남자들을 보면, 그의 발언은 정정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요즘 안방극장을 질투로 활활 불태우고 있는 남자들이다. <질투의 화신>(에스비에스)에서 표나리(공효진)를 좋아하는 이화신(조정석)과, <쇼핑왕 루이>(문화방송)에서 고복실(남지현)을 좋아하는 루이(서인국)가 대표적인 ‘질투하는 남자’들이다.
먼저, 이 남자의 대사부터 보라. 3년간 자신을 짝사랑한 표나리가 싫어서 친한 친구한테 소개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뒤늦게 마음이 가서는 후회로 몸부림친다. 표나리가 고정원(고경표)과 있는 모습을 본 이화신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양다리를 걸쳐라. 우리 둘 다 만나 보고 둘 중에 누가 더 좋은지 표나리가 선택하게 하자.” “난 그렇게라도 보고 싶어. 양다리를 걸쳐서라도 보고 살 거야.” “헤어지는 것보다 나아.” 질투에 눈이 멀어 양다리의 한짝에라도 걸쳐보겠다고 애원한다. 둘 다 안 만나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표나리가 한달 뒤 선을 보러 나가자 거기까지 쫓아가서는 ‘쪼잔하게’ 과거 발언까지 끄집어낸다. “평생 혼자 산다며, 남자는 안 만난다며!”
이화신에 견주면 루이의 질투는 귀엽다. 이불을 건네다가 소파에 넘어진 차중원(윤상현)과 고복실을 본 뒤 뾰로통해 소파에 털썩 누워서는 투정을 부리고, 차중원과 함께 출근하려는 고복실한테 자신도 그 차를 타고 가겠다며 떼를 쓴다. 여자 주인공의 한마디에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차중원한테 잘하라는 고복실의 메시지에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며 삐치더니, 이내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주인한테 사랑받으려는 강아지처럼 온갖 애교에 투정에 구애를 한다. 질투하는 남자들은 끊임없이 마음을 확인하려 든다. <구르미 그린 달빛>(한국방송2)의 이영(박보검)도 좋아하는 마음을 홍라온(김유정)에게 쉼없이 드러내며 반응을 기대한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질투는 주로 여자의 몫이었다. 남자들은 질투를 해도 ‘우아’했다. 안 그런 척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질투는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 주인공의 각성을 이끌어 내는, 차갑고 무뚝뚝한 남자가 질투 이후에 급격하게 멋있어지기 시작하는 장치였다”고 했다. 요즘 드라마에선 남자가 질투를 하면서 더 지질하게 변한다. 무게 잡던 고정원마저 질투에 빠지니 지위고 뭐고 사라지지 않았던가.
남자들의 변화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우아한 질투는 비현실적이었다. 그 자체가 여성들이 갖고 있는 로망을 반영한 것인데, 남자에게 덧씌워져 있던 젠더적 의미에서의 남성성, 그 껍질이 벗겨진 것이다”라고 했다. 질투 끝에 나온 남자의 행동으로 묘사됐던 강제 키스나, 벽에 밀치기, 손목 잡고 끌기 등의 폭력적인 모습들이 여성혐오 현상과 맞물리면서 더는 멋진 모습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영향을 줬다. 김선영 평론가는 “그런 행동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높이나 취향이 바뀌었다”며 “트렌드에 맞춰 기존의 뻔한 로맨틱코미디의 구도를 바꾸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실적인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요즘 드라마 분위기와도 맞물린다.
실제 현실의 남자들은 이화신처럼 사랑 앞에 지질하다. 그런 사실적인 남자들의 ‘대놓고 하는’ 질투에 여자들은 오히려 환호한다. <질투의 화신>은 1회 7.3%(닐슨코리아 집계)에서 16회 11.7%로 이화신이 질투를 시작한 이후 상승세다. <쇼핑왕 루이>도 시청률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 등에는 “나도 저런 적극적인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는 반응이 꽤 많다. 김선영 평론가는 “조정석과 서인국, 두 배우의 디테일을 잘 살린 연기도 질투하는 남자들의 호감도를 높였다”고 했다. <질투의 화신> 박신우 피디는 드라마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누구에게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내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사랑스러움, 애잔함이 ‘질투’를 통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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