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유지태가 웃는다.” 지난 26일 ‘부산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은 유지태의 웃음이 화두였다.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코미디 공연을 보며 ‘빵빵’ 터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어깨까지 들썩였다. 평소 과묵하고 진지한 이미지여서 웃겨도 참을 줄 알았다. “저 개그 좋아해요. 진지한 이미지는 배우로서 만들고 싶었어요. 무용수를 하다가 모델을 했고 배우가 됐어요. 당시는 모델 배우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배우로서 진지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생각했어요.” 2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진지하고 재미없다는 말보다 밝고 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며 한참을 진지하게 말했다.
27일 종영한 드라마 <굿 와이프>(티브이엔)는 대중에 친숙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 변화의 첫걸음일까. <굿 와이프>에서 야망에 불타는 검사 이태준으로 다시 ‘유지태 열풍’을 일으켰다. 아내를 두고 두번이나 외도했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결혼 전 아내한테 교통사고의 책임을 전가한 나쁜 남자이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이 너무 뜨거워 시청자들은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환호했다. “처음에는 이 배역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누구도 ‘쓰…’를 하고 싶은 배우는 없을 거예요.(웃음) 감독과 배우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도 강하고,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감성과 이성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인물이라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이태준 캐릭터가 쓰레기에 머물지 않고 ‘쓰랑꾼’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된 것 같아 다행이다”며 “매력적인 건 내가 만든 것 같다”며 어머 이 남자, 농을 쳤다. “제가 재미없다는 건 편견이라니까요!” 넓은 어깨, 중저음의 목소리, 애절한 눈빛까지 유지태의 매력이 이태준을 빛낸 건 맞다. 이태준을 연기하려고 근육만 5㎏을 찌우며 몸을 키웠단다. “제작진이 상대방을 제압하고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몸집을 불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제 예상과 달리 어깨를 좋게 봐주더라고요. 섹시한 느낌을 원했는데, 그런 반응이 나와서 다행이에요.”
전도연과의 키스신 조회수를 말하고, ‘쓰랑꾼’이라는 별명을 신기해 하는 등, <굿 와이프>를 하면서 영화와 다른 실시간 반응이 흥미로웠던 듯하다.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시작해 배우 경력 19년차인데, 드라마는 세 편이 전부인 그는 “이제 드라마에도 눈을 돌리고 있”단다. “영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영화만 보고 왔어요. 그런데 서른 중후반이 되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나누는 게 무모하고 쓸데없는 경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는 소화하는 양이 많기 때문에 훈련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배우를 만나기 때문에 배우는 부분도 많더라고요.” 스스로를 “(드라마에서는) 신인배우”라 부르며 “드라마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보다 좀 더 유연해진 것”도 있다. 아빠가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굿 와이프>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장면이 정말 남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아이가 커서 “아빠를 세계적인 배우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세계적인 배우가 되려고 외국어 공부를 10년 동안 꾸준히 했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남극일기>가 2005년 ‘시체스영화제’ 아시아 부문 작품상을 받는 등 출연한 영화가 세계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뿌듯하다고 했다.
실제로 만난 유지태는 그의 미소처럼 신중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굿 와이프>에서 인상적인 배우를 말해 달라니 판사로 나온 최병모와 장애인 변호사로 나온 유재명을 꼽았다. “그런 분들이 더 빛났으면 좋겠어요.” 2012년부터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를 진행하고, 그가 감독한 영화 <마이 라띠마> 속 타이 이주민 여성과 암담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남자처럼 중심이 아닌 부분에도 관심이 많다. 이유를 물으니 “설명할 수 없는데 괜히 마음이 가는 게 있다”고 했다. 신중하고 따뜻하다. “저 재미있다니까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나무액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