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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한겨레 프리즘/올림픽, 유도를 위한 변명

등록 2016-08-07 19:00수정 2019-06-30 19:17

남지은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3년 전 그날, 우리는 ‘오늘’을 이야기했다. 201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유도 세계선수권.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는 말했다.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하지만 7일(한국시각) 화면 속 그의 얼굴에서는 또다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유도 60㎏급 8강전에서 아쉽게도 랭킹 18위의 ‘러시아 복병’을 뛰어넘지 못했다.

김원진은 4년 전 최광현의 연습파트너로 영국 런던올림픽에 참가했다. 당시 선수촌에서 멀리 떨어진 별도의 숙소에 머물며 4년 뒤엔 반드시 대표선수가 되겠다고 절치부심했다. 4년 만에 기량이 쑥쑥 올랐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나가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계 랭킹 1위로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유력시됐다. 8강전에서 그의 한판패에 유도인들마저 놀랐다. 누구보다 아쉬운 건 5분을 위해 4년을 땀흘려온 그일 것이다.

유도 선수들은 ‘올림픽 효자종목’이라는 부담감에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 한국 유도는 역대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궁(각 19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금메달 11개를 획득했다. 이원희, 왕기춘, 최민호 등 대회마다 스타도 배출했다. 속된 말로 잘해봤자 본전. 못하면 이원희, 최민호와 비교당하면서 ‘시원시원하지 못하다’는 악플이 쏟아진다. 그래서 첫 주자들은 늘 어깨가 무겁다. “내가 성적을 내야 다른 선수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유도는 종목을 통틀어 가장 강도 높은 훈련으로도 유명하다. 재일동포 3세인 안창림은 태릉선수촌에 들어온 뒤 훈련이 힘들어 놀랐다고 했다. 천장에 박힌 밧줄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모래주머니를 발에 차고 뛰는 건 기본이다. 지금은 은퇴한 김재범은 “1등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 달리기를 할 때는 구토가 날 것 같다”며 “한마디로 지옥훈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대가 끊어지면 근육의 힘으로 버티며 상대를 넘어뜨려야 한다.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체중감량과도 싸워야 한다. 김원진과 안창림은 각각 대회 전 5~6㎏을 뺐다. 지금은 은퇴한 왕기춘은 매번 7~8㎏의 체중을 빼는 고통에 81㎏으로 체급을 올리기도 했다. 체중을 감량하는 종목은 많지만 유도 선수들이 힘을 내려면 많이 먹은 뒤 운동으로 그걸 근육으로 만들어야 한다. 리우처럼 장거리 비행은 기내식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대회 막바지에 경기가 있으면 조절하며 먹지만, 초반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꾹꾹 참아야 한다. 유도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길게는 한 달, 짧게는 1주일 전부터 체중을 감량한다. 공식 계체 2~3일 전에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

매일 이런 식으로 4년간 버텨왔지만, 단 5분 만에 승패는 갈린다. 자칫 옷깃이라도 내주면 몇 초 안에 승부가 결정나기도 한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데, 유도는 배신하기도 한다. 세계 랭킹 1위가 18위한테 지는 이변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올림픽 유도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겨도 져도 기분에 취해 있을 겨를도 없다. 한국 유도 선수들은 내 경기가 끝나면 바로 다음 경기가 있는 선수의 훈련을 도와야 한다. 경기 뒤 김원진은 카톡 메시지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며 “빨리 마음을 추스르겠다”고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유도 메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선수들은 ‘당연한 것’을 현실화하려 4년, 아니 그 이상을 구르고 또 구른다. 그들이 흘린 땀은 메달의 유무로 평가할 수는 없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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