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등학교 때 수학을 60점 맞았어. 과학하고도 거리가 먼 사람이야.” 그랬던 이순재도 보기 쉽고 유익하다고 느끼는 한국과 과학의 문명을 짚은 다큐멘터리가 방송한다. 21일 시작해 29일까지 매주 목·금요일 선보이는 <한국방송> 1텔레비전의 4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의 과학과 문명-위대한 유산>(밤 10시)이다. 제작진은 세계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민족이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생산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저력은 ‘과학 디엔에이(DNA)’라고 보고, 수학(1부), 의학(2부), 천문학(3부), 혼천시계(4부) 등 조선의 과학을 차례로 파헤친다. 이순재가 직접 프리젠터(안내자)로 나선다.
이순재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들을 쉽게 풀어내서 좋았다. 과학적 능력, 과학적 역사, 과학적 계통 이런 것들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역사와 과학을 다룬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위대한 유산>은 있는 사실을 요약한 게 아니라,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특히 새로운 인물을 추적해 재조명한 점이 눈에 띈다. 1부 ‘수학 조선’(21일)에서 등장한 최석정은 세계적인 수학자 오일러를 제치고 현대 조합 수학 백과사전 <조합론 편람>의 가장 윗줄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4부 ‘혼천시계, 조선의 시간을 잡아라’ 편의 동서양 기계기술을 접목해 ‘혼천시계’를 만든 송이영도 그렇다. 김정희 피디는 “송이영은 역사책에 한 줄 정도 나온다”며 “숨어 있는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선조의 과학적 업적을 발굴하고,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유산 같은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수영상 작업,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등으로 보기 쉽게 풀어 흡인력을 높였다.
최근 다큐들이 해외와 합작하며 정작 한국 시청자들의 관심사보다는 보편적인 소재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순수 우리 자본으로 한국 시청자들도 흥미를 느끼고 다른 나라들에도 한국의 탁월함을 좀더 자세하게 알릴 수 있는 소재를 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2부 ‘세계가 탐낸 조선의 의학, 동의보감’(22일)은 미국 듀크대에서 침을 통한 통증완화를 환자들에게 권하는 등의 사례를 통해 조선 의학의 경지를 전달한다. 피디 4명이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와 함께 지난 2월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신동원 전북대 연구소 소장은 “조선을 계기로 다양한 역사의 과학문명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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