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을 다시 메디컬 드라마가 점령하고 있다. <닥터스>(에스비에스)와 <뷰티풀 마인드>(한국방송2)가 월화 밤 동시간대 방송 중이고, 순수 메디컬 드라마는 아니지만, 여주인공이 의사인 <더블유(W)-두개의 세계>(문화방송)가 20일 시작한다. 한석규의 출연이 거론되는 <낭만닥터 김사부>(에스비에스)도 하반기 방영을 앞두고 있다. 성공확률 90%. 메디컬 드라마는 사극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흥행 보증수표다. 한국 메디컬 드라마는 1980년 신구가 주연을 맡은 <소망>(한국방송1)을 시작으로, <닥터스>까지 36년 동안 27편(사극, 시트콤, 수사물 제외)을 선보였는데, 세 편(<메디컬센터>, <메디컬탑팀>, <뷰티풀 마인드>)을 제외하고 모두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영 중인 <닥터스>도 병원에서 연애하는 진부한 내용에도,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화제를 모은다. 아픔을 지닌 여자가, 따뜻한 남자를 만나 치유하는 이야기인데, 최근 불어닥친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열풍을 탔다. <뷰티풀 마인드>는 시청률은 4%대로 낮지만, 메디컬 드라마에 미스터리한 설정을 가미해 마니아층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메디컬 드라마가 36년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2011년 <브레인>(한국방송2)을 담당했던 이건준 <한국방송> 책임피디(시피)는 “메디컬 드라마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휴머니즘을 기본으로, 각박한 사회에 생명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보여준다”며 “환자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사연을 펼칠 수 있고, 외과, 내과 등 분야에 따라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시들지 않는 메디컬 드라마 인기의 역사를 훑어본다.
■ 일상극에서 미스터리물까지 시대따라 변주
메디컬 드라마는 일요 아침드라마로 시작해 정치극, 판타지, 미스터리 등으로 변화해왔다. 1980년대는 메디컬 드라마의 태동기였다. 환자들한테 희망을 주는 일상극이 많았다. <소망>(1980)은 동네 개인병원을 배경으로(후에 종합병원으로 무대를 옮김) 의사와 환자 간의 갈등, 의사의 일상 등을 다뤘고, 1984년 <당신>(문화방송)과 1988년 <제7병동>(한국방송2)은 각각 정신과와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환자들의 치료 과정과 가족의 애환에 집중했다. 당시 메디컬 드라마는 극적 재미 못지않게 의료 정보 제공자의 역할에도 주안점을 뒀다. 80년대 신문 기사를 보면 “<당신>은 정신질환자의 효과적 치료에 목적을 뒀고”, “<제7병동>은 환자의 질병이나 의술에 대한 지식을 부각해 건강 정보 제공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메디컬 드라마는 1990년대 들어 <종합병원>(1994년, 문화방송)을 만나 대중적 장르로 올라섰고, 2000년대 <하얀거탑>(2007년, 문화방송)으로 장르의 저변을 넓혔다. 병원 내 권력관계와 암투, 야망을 숨기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2010년에 들어서는 시공간을 초월하거나(<닥터스>), 미스터리 장치를 심는(<뷰티풀 마인드>) 등 장르의 섞임이 이뤄졌다.
시대 변화에 따라 소재의 무게도 더해졌다. 2010년 들어서는 의료계의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골든타임>은 중증외상센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살 수도 있는 환자를 죽게 만드는 의료 현실의 뒷면을 고발했고,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의 <디데이>에서는 돈을 벌려고 불필요한 엠아르아이를 찍게 하고, 최고의 수익을 거둔 과에 포상하는 등의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는 “영리 추구에 치중하는 의료계의 현실 등과 맞물려, 의사를 영웅화하는 드라마보다는 현실 고발적인 내용에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성형외과? 피부과? 티브이는 외과가 최고!
2014년 기준으로, 복지부에 등록된 전문의 중에서 가장 많은 과목은 내과다. 드라마에서는 다르다. 메디컬 드라마 주인공의 전공은 외과의사가 85%로 압도적이다. 과목이 불분명한 <소망>을 제외한 25편 중에서 21편이 외과의사다.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가 각각 6편으로 고르게 분포한다. 응급실이 2편이고, 정신과, 산부인과, 소아과도 한 편씩 등장했다. 초창기에는 <종합병원>처럼 일반외과가 많았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선택과 집중이 뚜렷하다. 뇌를 들여다보는 신경외과(<브레인>),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뉴하트>), 외상외과(<골든타임>) 등으로 전문화했다. 이건준 시피는 “수술이나 긴박한 장면이 많은 외과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보여주기 제격이다”라며 “수술장면 등을 보여주는 제작기술이 발전한 것도 뇌나 심장 등 어려운 분야에 눈을 돌리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전공 선택을 보면, 한국 의료계의 현실도 보인다. 박홍균 <뉴하트> 피디는 당시 인터뷰에서 “<뉴하트>는 흉부외과 지원자가 줄어들고 심장 수술비와 쌍꺼풀 수술비가 같은, 말도 안되는 한국 의료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했고, 이성민은 <골든타임> 제작발표회에서 “한국 의료 체계에서 중증 외상환자들에 대해 신속한 처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미흡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열심히 뛰는 분들이 조명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골든타임>에서는 처음으로 부산의 병원을 배경으로 현실의 서울 쏠림 현상에 한방 먹였고, <뉴하트>에서는 지방대 출신 주인공을 등장시켜 학벌 차별에 메스를 들이댔다.
■ 정치? 고발? 뭣이 중헌디! 병원에선 연애지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역시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였다. 역대 메디컬 드라마 시청률을 보면, 신경외과를 주무대로 전문의 안재욱과 레지던트 1년차 김희선의 티격태격 사랑을 담은 <해바라기>가 32%로 가장 높았다. 이복형제의 병원내 권력 다툼을 다루는 한편으로 삼각관계에도 치중했던 <의가형제>가 2위(31.3%), <뉴하트>가 3위(24.6%)였다. 이어 <종합병원 시즌1>(21%), <외과의사 봉달희>(18.2%) 순이었다. 의료계 ‘내부 정치’ 문제에 집중했던 <하얀거탑>(14%)보다 높다.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는 “의학 드라마의 남녀 시청 비율이 6대4 정도로 여자가 많다”며 “최근 <닥터스>가 미스터리를 가미한 <뷰티풀 마인드>보다 압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멜로의 수요가 높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런 멜로 강박증이 메디컬 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를 막는 벽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한류 열풍과 더불어 중국 등에서 좋아하는 멜로 드라마에 치중해 실험적인 시도가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피디는 “메디컬 드라마가 꾸준히 사랑받으려면 멜로에 더해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