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 입문 안 하신다더니 왜 하신 거예요?” 진행자의 돌직구에 표창원 의원이 당황한다. 그러더니 ‘먹방’을 찍자며 함께 컵라면을 먹는다. 개그맨 양세형이 진행하는 토크프로그램 <양세형의 숏터뷰>의 한 장면이다. 개그맨이라는 장점을 살려 ‘오지다’, ‘지리다’ 등의 신조어로 질문하는 등 발칙한 진행이 이어진다. 개그맨이 국회의원을 ‘가볍게’ 인터뷰하는 발상의 전환이 화제를 모으는데, 티브이에서는 볼 수 없다. <에스비에스>(SBS)가 인터넷으로만 제공하는 모바일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에스비에스>는 지난달 2일 ‘모비딕’ 채널을 론칭하고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에스비에스는 사실 후발주자다. <한국방송>(KBS)은 지난해 7월1일 콘텐츠 제작자들이 기반이 된 ‘예띠 스튜디오’를 출범했고, <문화방송>(MBC)은 올해 2월 모바일 전용관 ‘엠빅 티브이’를 열었다. <티브이엔>은 지난해 8월 ‘티브이엔고’를 만들어 모바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제이티비시>(JTBC)도 ‘디지털 기획팀’을 꾸리고 ‘짱티비시’ 등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실험 단계로 이어지다가 에스비에스가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방송사들의 모바일 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다. 지상파는 모바일 전용 콘텐츠를 따로 만들고, 종편 포함 케이블은 인터넷으로 먼저 내보낸 뒤 이를 편집해 티브이에서 방영하며 정규 프로그램의 화제몰이로 활용하는 식이다. 문화방송 ‘엠빅 티브이’가 네이버 티브이 캐스트와 유튜브 정도에 제공하던 것에서, 에스비에스 ‘모비딕’은 네이버, 페이스북, 피키캐스트, 유튜브, 카카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으로 출시 범위가 확대됐다.
■ 감각 콘텐츠로 젊은층을 잡는다 방송사의 모바일 콘텐츠 시장 진출은 생존을 위한 모색이다. 에스비에스 모바일 제작팀 박재용 책임피디(CP)는 “현재 대부분의 콘텐츠가 인터넷으로 유통되고, 본방송을 기다려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송을 보는 식으로 젊은층의 소비 패턴이 변하고 있다. 방송사들도 기존의 티브이매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미국 미디어 시장 조사업체 닐슨은 미국 전체 가구의 약 5%(500만명)가 제로 티브이 가구(집 티브이 대신에 다양한 플랫폼으로 방송을 보는 가구)라고 했다. 한국도 아이피티브이(IPTV)의 증가와 함께 스마트폰 사용자가 올해 4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티브이 시청 패턴이 바뀌었다. 장준기 네이버 동영상서비스 수석부장은 “웹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도 엘티이(LTE) 서비스 확대로 모바일을 통해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티브이를 봤네”(장기하와 얼굴들 ‘TV를 봤네’)라는 가사는 이제 젊은 세대에게는 집 티브이만이 아닌 제각각의 플랫폼의 경험으로 다르게 해석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콘텐츠도 짧은 시간 내에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스낵 컬처’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 기호에 맞췄다. 출퇴근길이나 잠들기 전 ‘자투리’ 시간에 시청이 가능하도록 대개 5~10분 정도로 구성된다. 티브이와 달리 핵심만 담아 임팩트를 강조한 구성이 많다. 에스비에스 <양세형의 숏터뷰>는 양세형이 국회로 들어가려는 영상을 짧게 보여주고 질문별로 짧게 편집해 보여주는 식이다. 에스비에스는 홍석천이 경리단길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과정을 담은 <경리단길 홍사장>, 조세호·남창희·이용진이 시청자들한테 멜로디를 받아 국민 노래를 만들겠다는 <한곡만 줍쇼>,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정체불명의 괴담지를 찾아가 실체를 확인하는 <아이오아이의 괴담시티> 등 10개 프로그램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방송은 아프리카 티브이처럼 1인 콘텐츠 프로그램을 다수 포진시켰고, 문화방송은 대표 프로그램인 <꽃미남 브로맨스> 외에도 음악방송의 직캠(직접 촬영) 영상이나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무대 뒤 대기실 모습 등을 보여준다. 티브이엔고는 <신서유기>를 매회 7~10분 남짓 선보였고, 이를 재편집해 티브이 정규 프로로 내보냈다. 박재용 시피는 “모바일 콘텐츠는 티브이 문법이 아니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직설화법이다. 방송에 비해 수위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편성과 편집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포도 전략적이다. 박재용 시피는 “모바일마다 사용자와 성격이 다르다. 페이스북은 퇴근시간, 네이버 티브이 캐스트는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 나가는 등 다양한 포털 성격과 이용자에 따른 맞춤형 차별화 전략도 실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세형의 숏터뷰>는 직장인 퇴근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3시에 첫 방송을 내보내는 식이다. ‘티브이엔고’는 스타 피디인 나영석 피디의 <신서유기>를 첫 작품으로 내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젊은 세대의 욕구에 맞춘 변화와 고민에 사용자들도 반응한다. <양세형의 숏터뷰> 1회는 1주일도 안 되어 조회수 100만을 넘어섰다. 세계 각국의 케이팝 팬을 겨냥해 7개 국어 자막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엠빅티브이’는 조회수가 1800만을 넘는다.
<에스비에스> 모바일 콘텐츠 <양세형의 숏터뷰>
■ 모바일 수익모델 잡아라…무분별 피피엘 우려도 문화방송은 출범 당시 자사 예능 피디들을 모바일 팀에 투입했고, 한국방송은 유명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소속된 업체와 업무계약을 맺고 외부 인력을 활용했다. 플랫폼개발부 고찬수 팀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외부의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 손을 잡고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를 창작하겠다”고 했다.
방송사들이 저마다 전략을 갖고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광고와 콘텐츠 판매 수익이다. 국내 모바일 광고 시장은 1조28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갑절 가까이 늘었다. 반면, 전체 방송광고 시장에서 지상파의 비중은 2006년 75.8%에서 2015년 55.0%로 떨어졌다.(방송통신위원회 ‘2015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 상황') 지상파에서 시청률 1위 하는 드라마도 광고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지상파보다 중소업체들의 광고 비중이 급증하면서 모바일 시장은 또 하나의 광고 거점이 되고 있다. 동영상 앞뒤로 붙이는 배너 광고 등 수익모델이 많다. 티브이와 달리 간접광고(피피엘·PPL) 규제의 무풍지대란 점도 수익 창출을 기대하게 한다. 수억원을 들여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티브이 콘텐츠보다, 몇천만원으로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율성도 좋다. <숏터뷰>의 경우 피디 1명에, 카메라 1명, 작가 2명 총 4명이 만든다. 같은 토크프로그램인 <황금어장 라디오스타>(16명)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아직 직접적인 수익은 미미하다. 국내 조회수 6400만뷰, 중국에서만 3억뷰를 기록한 <신서유기 2>도 적자였다. 클릭수가 바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플랫폼마다 차이는 있지만 클릭 건당 수익은 1~2원 정도다. 유튜브에서 조회수 100만을 기록해도 거둘 수 있는 수익은 100만원 남짓이다. 박재용 시피는 “현재 수익모델은 광고와 콘텐츠 판매인데, 플랫폼과 방송사의 수익 분배도 기준이 제각각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미래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는다. 미국의 모바일 업체인 버즈피드도 현재는 적자이지만 미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를 이어가는 사례가 있다. 박재용 시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바일 콘텐츠라는 점을 내세워 장기적으로 중국 등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티브이와 달리 제재가 없어 간접광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튜브 등을 무대로 동영상 서비스를 하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은 별다른 규제 없이 제품 소개 등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사례가 많다. 큰 방송사에서 웹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형식의 광고를 유치하고 협찬까지 활용할 경우 방송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기존 규제를 피해 수익모델을 다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기혁 티브이엔 전략팀장은 “모바일만의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것이 성공 열쇠”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규제 사각지대에 방송사들마저 뛰어들면서 웹콘텐츠의 전반적인 상업화 경향이 더욱 심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