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티브이 연예>(에스비에스·SBS).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온라인·모바일에 속보 뒤지고
케이블 등 접근 창구는 늘어나
기획 등 차별화 전략에도 휘청
32년 ‘연예가 중계’ 17년 ‘섹션TV’
‘도미노 현상 일까’ 방송가 우려
“인터넷에 검증 안된 정보 난무할 때
큰 그림 그려주는 프로 필요한데…”
케이블 등 접근 창구는 늘어나
기획 등 차별화 전략에도 휘청
32년 ‘연예가 중계’ 17년 ‘섹션TV’
‘도미노 현상 일까’ 방송가 우려
“인터넷에 검증 안된 정보 난무할 때
큰 그림 그려주는 프로 필요한데…”
진행자인 장예원 아나운서가 오프닝 때부터 울컥했다. “아! 어떡하지.” 그래도 힘차게 하자는 동료들의 오가는 말에 여느 때보다 방송은 활기찼다. 23일 막을 내린 연예정보 프로그램 <한밤의 티브이 연예>(에스비에스·SBS, 이하 ‘한밤’)의 마지막 모습이다. ‘한밤’이 1995년 첫 방송 이후 2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방송사는 ‘재정비 기간을 갖는 것’이라고 했지만, 내부에서는 ‘사실상 폐지’로 본다.
‘한밤’은 1984년 시작한 <연예가 중계>(한국방송2·KBS2)와 1999년 시작한 <섹션 티브이 연예통신>(문화방송·MBC, 이하 ‘섹션’)과 함께 티브이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온라인 매체, 케이블 방송 등 연예기사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위기론은 5~6년 전부터 나왔지만, 그래도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설마’ 하던 ‘한밤’ 폐지가 현실이 되면서 도미노 현상이 일까, 우려의 목소리도 방송가에선 나온다. 문화방송 ‘섹션’의 경우 담당 피디에게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의 고민을 들으려 홍보팀을 통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얘기를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 걸까? 차별화된 전략으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려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인터넷, 모바일에 휘청…젊은층도 빠져나가 2000년 1월6일 ‘한밤’ 시청률은 21.6%(티엔엠에스 집계)였다. 그러나 바둑계를 삼킨 알파고처럼, 인터넷의 급성장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집어삼켰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9%에 그쳤다. ‘한밤’ 관계자는 “다매체, 다채널 환경이 되면서 ‘1주일 빠른 뉴스’가 ‘1주일 느린 뉴스’가 됐지만, 가장 타격을 준 건 인터넷과 모바일의 성장”이라며 “속보성에서 온라인에 뒤처질 수밖에 없고,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개인 모바일 방송도 늘면서 차별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데도 한계가 왔다”고 말했다. 제작발표회나, 특정 연예인의 대기실 모습 등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전매특허였던 ‘뒷이야기’도 기획사가 자체적으로 찍어 포털에 제공하는 등 클릭 한번으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연예정보를 소비하는 젊은 시청자들이 빠져나갔다. ‘한밤’의 2000년 1월6일 방송과 마지막 방송의 연령대별 시청률을 비교하면 많이 본 시청층은 10~30대에서 40~50대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였다.
■ ‘기획+유행’으로 위기 탈출 노력 매체 환경과 시청층 등의 변화로 위기를 맞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수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활로를 모색해왔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수년 전부터 온라인의 속보성과 차별화를 중점적으로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기획성이다. ‘한밤’ 관계자는 “그주에 화제가 된 이슈를 좇아 추적하는 르포 형식의 기획 취재에 힘을 줬다”고 말했다. 가령, 태진아가 도박 의혹을 제기한 <미주 한국일보>의 기자와 공방을 벌일 때,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사실을 확인하는 식이다. 클라라 등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의 단독 인터뷰 등도 그렇다. ‘한밤’ 관계자는 “<한밤의 티브이 연예>는 교양국에서 만들었다. 처음 기획을 교양국에서 한 것도 있지만, 연예인을 교양적인 입장에서 비판하고 견제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드라마 배경음악(오에스티) 100선을 소개하는 식의 ‘별별랭킹’(<연예가 중계>) 등 자체 조사한 다양한 정보 제공과, 집 나간 젊은층을 불러들이려 10대 눈높이에 맞춘 변화들도 시도했다. <연예가 중계> 관계자는 “‘팟스타그램’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짤방을 모은 기획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연예가 중계>는 오는 4월 중순 개편에 맞춰 추가적인 변화를 시도할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연예정보의 단순 전달을 넘어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 한편으로,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트렌디한 꼭지를 강조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맷의 변화도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리포터가 촬영하고 온 녹화 영상을 틀어주고, 주제에 맞게 토크하는 식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런 형식도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시즌 때마다 조금씩 바꾸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 연예전문 리포터는 “리포터들도 예전보다 더 새로운 질문, 다른 그림을 그리려고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어려워진 취재환경…축적된 역량 발휘가 관건 매체가 많아지고 취재가 힘들어지면서 연예정보 프로그램만의 깊이 있는 정보를 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밤’의 폐지도 이런 변화의 시도가 마음처럼 되지 않은 데 있다. <한밤의 티브이 연예> 관계자는 “예전보다 연예인들을 취재하는 게 힘들어져서 깊게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다양한 활로를 모색해봤지만, 기대만큼의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이런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취재환경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3사 방송 내용이 광고 현장 인터뷰 등 모두 비슷하게 뻔한 질문과 화면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특히 ‘섹션’ 기자방담은 인터넷에 나온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재탕하는 데 그쳐, 케이블 채널의 가십 중계성 방송과 차별점을 전혀 드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제2의 부흥기를 이끌려는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온라인에 끌려다니지 말고,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연예전문 리포터는 “수십년 동안 풍부한 자료를 축적해온 걸 활용하면 온라인과는 차별화된 그림을 만들 수 있다. 방송에 나온 내용이 온라인으로 재생산될 수 있도록 특징을 잘 활용하면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밤’ 마지막회에서도 전지현의 신인 때 인터뷰 모습, 고 최진실의 인터뷰 모습 등을 다시 보여줬는데, 다음날 폐지가 아쉽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방송계에선 예능정보 프로그램의 존재 의미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인터넷에 온갖 검증안 된 정보가 난무할 때, 갈래를 잡고 큰 그림을 그려주는 건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큰 장점”이라며 “온라인 매체가 활성화됐다고 신문이 사라지면 안 되듯이,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무작정 없앨 것이 아니라, 살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밤’은 2010년 ‘해외 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방송인 신정환이 ‘뎅기열’로 현지 병원에 입원한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동정표를 얻으려는 자작극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직접 필리핀으로 건너가 해당 의사를 만나 증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 논란의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섹션 티브이 연예통신>(문화방송·MBC).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연예가 중계>(한국방송2·KBS2).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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