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홀대받던 ‘시그널’ 대박에
장르물 작가들 “통쾌하다” 반응
티브이엔, 장르물 오아시스로
지상파 내부서도 “관성 깨보자”
장르물 작가들 “통쾌하다” 반응
티브이엔, 장르물 오아시스로
지상파 내부서도 “관성 깨보자”
“묵은 체증이 가시네요.” <시그널>(티브이엔)의 성공에 이 드라마를 쓴 김은희 작가만큼이나 기뻐한 이들이 있다. 바로 <시그널> 같은 장르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다. “<시그널>이 잘됐다고 내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지상파에 대신 복수해준 것 같아 통쾌하다”는 게 한 장르드라마 작가의 말이다.
<시그널>은 1년 가까이 <에스비에스>와 편성을 논의했지만, ‘대본이 재미없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했다. 장르드라마에 대한 지상파의 홀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장르드라마의 마니아적인 특성상 지상파 주요 시청층인 중장년층한테 사랑받기 어렵고, 주인공들의 일상이 많이 나오지 않아 피피엘(PPL·간접광고)도 여의치 않다는 게 이유다. <시그널>만 해도 형사인 조진웅이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잠복할 수도 없고, 김혜수가 수천만원짜리 가방을 매일 바꿔가며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티브이엔> 쪽은 “<시그널>은 형사들의 회식 장소인 닭갈비집 등 최대한 내용과 어울리는 피피엘을 하려고 노력했다. 피피엘로 벌어들인 수익은 일반 드라마보다는 훨씬 적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다른 드라마에 견줘 지상파의 구박은 더 심했다. 2014년 방송한 <신의 선물-14일>(에스비에스)은 평균 시청률 8.8%(닐슨코리아 집계)였지만, 1~16회가 연결고리를 갖고 돌아가는 미국 드라마 같은 장르적 구성에 평가는 좋았다. 그러나 중반 이후 시청률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에스비에스 간부가 제작진한테 “돈 드는 신을 빼라”고 지시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제작비 적자를 작가 탓으로 돌렸다고도 한다. 방송계에선 피피엘로 제작비 충당이 가능했다면 이런 압박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장르드라마 작가들이 작품에 들이는 공은 엄청나다. 매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고 소품 하나, 장소 하나 다 의미있어야 한다. 주로 형사물이나 살인 등 어떤 사건을 풀어가는 복잡한 내용이 많다 보니, 사전 취재도 강도가 높다. 그렇지만 1회부터 보지 않으면 줄거리를 따라가기 힘든 탓에, <시그널> 같은 예외를 빼면, 대다수는 ‘대박’을 기대하기 힘들다. 제작 환경도 좋지 않다. 한 지상파 간부는 “장르드라마의 경우 준비하던 드라마의 편성이 밀리면 ‘땜방’용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르드라마는 사전 제작이 필수인데, 시간에 쫓겨 편성되다 보니 중요한 소품이 빠지는 등 엉성해지기 일쑤다. 한 장르드라마 작가는 “<시그널>의 성공은 지상파와 달리 장르물의 제작 환경을 이해하고 인정해준 티브이엔 덕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자조 속에서도 장르드라마 작가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한 장르드라마 작가는 “지상파의 홀대를 받을 때는 나도 시청률 잘 나오는 막장 섞은 주말드라마를 써야 하나 회의감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향의 디엔에이(DNA)를 바꿀 수는 없다.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런 장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편성이 잘 안되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고 싶다.”
<시그널>의 성공은 설움을 삼키던 장르드라마 작가들한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일단 티브이엔은 계속 오아시스로 남게 될 것 같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시그널>의 성공 이후 장르드라마 시놉시스가 많아졌고, 모두 티브이엔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에서도 “여전히 중견 간부급에선 반대가 만만치 않지만, 젊은 피디 중심으로 관성을 깨보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한 지상파 간부)는 평가가 나온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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