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임예진, 문근영, 박보영, 아이유, 수지, 혜리, 설현, 이수민, 쯔위. 사진 각 방송사 제공
“‘국민 배우’는 배우에 대한 최고의 호칭”(한창호 <여배우들>)이다.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이자, 국민을 상징하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배우’ 대신 ‘여동생’이란 단어를 붙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린 여자에 대한 남성의 성적 판타지가 반영된 ‘롤리타 콤플렉스’의 연장선이라는 시선이 따라온다.
이런 지적들을 고려하더라도, ‘국민 여동생’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청춘 아이콘’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체로 그 시대 독보적으로 인기를 끈 풋풋하고 발랄한 하이틴 스타를 일컫는 호칭으로 쓰여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임예진과 80년대 이상아, 이미연 등을 거쳐 1997년 ‘에스이에스’(SES)를 필두로 한 걸그룹 ‘청춘 아이콘’ 전성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저마다 ‘섹시’와 ‘순수’ 또는 ‘귀여움’을 앞세운 청춘 스타들의 각축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당대 대중의 욕망과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며 변화를 거듭해온 ‘청춘 아이콘’의 변천사를 들여다본다.
임예진·문근영의 ‘청순 계보’
‘섹시·성숙’ 수지·설현에 주춤
15살 이수민 차세대 1순위
“걸그룹 과부하 속 순수 강조” ‘국민 여동생’ 표현은 논란
“롤리타 콤플렉스의 연장선”
“가부장적 시선 반영” 비판도 ■ ‘순수의 시대’ 2000년 문근영 임예진으로 시작된 풋풋한 청춘의 대명사는 문근영한테 그대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는 채연, 이효리 등 섹시 가수들이 사랑받던 시절이다. 이 틈에서 맑은 매력의 문근영은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0년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등장해 눈도장을 찍었고, 2004년 영화 <어린 신부>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 처음 ‘국민 여동생’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당시 문근영은 임예진처럼 크고 맑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의 이미지를 풍겼다. <어린 신부>에서 대놓고 ‘나는 아직 사랑을 몰라’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70~80년대 가부장적 시대의 시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한 배우는 “순수한 외모에 환호하는 한편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를 ‘결혼’이라는 상황 속에 둔 것 자체가 남성 판타지의 자극이라는 불편함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지희 경상대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책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에서 “(대중문화 속 소녀의 이미지는) 가부장적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소녀가 갖춰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 내면화됐다”고 지적했다. ■ ‘당찬 아이’ 2008년 박보영→2010년 아이유 여성들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확고해진 2010년을 기점으로 시대의 동생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로 문근영의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넘겨받은 박보영이 그랬다. 아이 엄마가 된 그는 순수하고 맑은 ‘동생’ 이미지는 그대로지만, 당차진 모습으로 아이콘의 변화를 알렸다. 깜찍·발랄함을 앞세운 청춘 아이콘의 대표주자는 2010년 등장한 아이유였다. 그는 ‘좋은 날’에서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 대놓고 이야기하며 남성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웃던 이전 아이콘들과 달리,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깜찍한 모습을 드러냈고, 의견을 당차게 말했다.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면, 아이유는 ‘삼촌 부대’라는 말을 등장시켰다. 한 케이블 티브이의 드라마 피디는 “아이유는 10대가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함과 20대가 내뿜는 깊은 감성이 두루 느껴졌다. 아이유 때부터 ‘국민 여동생’이 마냥 어리게만 보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성숙’해진 아이콘 2012년 수지 아이유보다 한 살 어린 수지에 이르러 청춘 아이콘은 역설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이미지를 획득한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90년대 대학생으로 등장한 수지는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청춘의 상징이 됐다. 문근영, 아이유과 달리 마냥 어리고 귀여운 느낌보다는 감수성 돋는 성숙한 느낌이 더해졌다. 한 30대 남성 팬은 “아이유는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동생 같았다면, 수지는 내 여자 같은 느낌이 들어 설렌다”고 말했다. 한 요구르트 광고에서 수지는 “나 오늘 첫키스 할 거야”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지켜주고 싶은 어린아이의 이미지에서 한발짝 나아갔다. ■ ‘섹시’와 ‘귀여움’의 각축 혜리⇔설현 혜리는 2014년 <일밤-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잘 먹고, 민낯으로 씩씩하게 다니는 모습 등으로 호감을 샀다. 교관과의 이별을 앞두고 ‘아잉’이라는 애교 한방으로 단숨에 수지의 바통을 이어받는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혜리의 바통은 다시 1년도 안 되어 설현이 이어받았다. 2012년 데뷔해 영화 <강남 1970> 등에 출연했지만, 스타덤에 오른 건 지난해 한 이동통신회사의 모델로 섹시한 뒷모습을 강조하면서부터다. 그러나 1월 끝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다시 혜리가 청춘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등 ‘섹시’와 ‘귀여움’을 앞세운 두 아이돌 간 엎치락뒤치락 각축전이 이어지고 있다. 설현은 청순한 얼굴 한편으로 ‘섹시’한 몸매를 전면에 내세우며 청춘 아이콘의 자리에 올랐다. 이를 두고는 “몸매를 강조하는 최근의 성적 상업화 경향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진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차세대 청춘 아이콘은 누구? 설현·혜리의 양강 체제에 대한 도전은 벌써부터 치열하다. 에스비에스의 한 라디오 피디는 “청춘 아이콘의 ‘소비’ 주기가 몇년에서 몇개월로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주자는 15살 중학생 이수민이다. <보니하니>(교육방송)를 진행하는 이수민은 성숙한 외모와 똑부러지는 진행 실력, 당찬 성격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이 대상 프로인데 삼촌 팬들도 찾아서 볼 정도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와 걸그룹 ‘여자친구’도 거론되고 있다. 이 피디는 “설현과 혜리 이후 2016년엔 다시 문근영 시대처럼 순수가 강조된 아이콘들이 뜨고 있다”며 “섹시함을 강조하는 걸그룹 과부하 상태에서 빚어진 역전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청춘 아이콘의 굴레 큰 환호를 받지만, 금세 다른 이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청춘 아이콘들의 변신 노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걸그룹이 쏟아지면서 ‘국민 여동생’ 칭호를 누리는 나이도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20대 초반만 되어도 화제의 중심에서 비켜난다. 변신에 대한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문근영은 지난해 드라마 <마을> 뒤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로 더 성장하고 싶은데 ‘국민 여동생’ 타이틀 때문에 틀 안에 가둬지는 것 같아 싫었다”고 말했다. 정점을 맛본 청춘 아이콘들이 후유증을 앓지 않으려면, 스스로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유는 지난해 ‘스물셋’으로 섹시한 무대를 선보였고, 공개 연애도 발표했다. 문근영은 끊임없이 성숙한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혜리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생각하면 힘들다. 당연히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연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섹시·성숙’ 수지·설현에 주춤
15살 이수민 차세대 1순위
“걸그룹 과부하 속 순수 강조” ‘국민 여동생’ 표현은 논란
“롤리타 콤플렉스의 연장선”
“가부장적 시선 반영” 비판도 ■ ‘순수의 시대’ 2000년 문근영 임예진으로 시작된 풋풋한 청춘의 대명사는 문근영한테 그대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는 채연, 이효리 등 섹시 가수들이 사랑받던 시절이다. 이 틈에서 맑은 매력의 문근영은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0년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등장해 눈도장을 찍었고, 2004년 영화 <어린 신부>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 처음 ‘국민 여동생’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당시 문근영은 임예진처럼 크고 맑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의 이미지를 풍겼다. <어린 신부>에서 대놓고 ‘나는 아직 사랑을 몰라’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70~80년대 가부장적 시대의 시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한 배우는 “순수한 외모에 환호하는 한편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를 ‘결혼’이라는 상황 속에 둔 것 자체가 남성 판타지의 자극이라는 불편함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지희 경상대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책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에서 “(대중문화 속 소녀의 이미지는) 가부장적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소녀가 갖춰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 내면화됐다”고 지적했다. ■ ‘당찬 아이’ 2008년 박보영→2010년 아이유 여성들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확고해진 2010년을 기점으로 시대의 동생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로 문근영의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넘겨받은 박보영이 그랬다. 아이 엄마가 된 그는 순수하고 맑은 ‘동생’ 이미지는 그대로지만, 당차진 모습으로 아이콘의 변화를 알렸다. 깜찍·발랄함을 앞세운 청춘 아이콘의 대표주자는 2010년 등장한 아이유였다. 그는 ‘좋은 날’에서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 대놓고 이야기하며 남성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웃던 이전 아이콘들과 달리,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깜찍한 모습을 드러냈고, 의견을 당차게 말했다.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면, 아이유는 ‘삼촌 부대’라는 말을 등장시켰다. 한 케이블 티브이의 드라마 피디는 “아이유는 10대가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함과 20대가 내뿜는 깊은 감성이 두루 느껴졌다. 아이유 때부터 ‘국민 여동생’이 마냥 어리게만 보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성숙’해진 아이콘 2012년 수지 아이유보다 한 살 어린 수지에 이르러 청춘 아이콘은 역설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이미지를 획득한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90년대 대학생으로 등장한 수지는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청춘의 상징이 됐다. 문근영, 아이유과 달리 마냥 어리고 귀여운 느낌보다는 감수성 돋는 성숙한 느낌이 더해졌다. 한 30대 남성 팬은 “아이유는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동생 같았다면, 수지는 내 여자 같은 느낌이 들어 설렌다”고 말했다. 한 요구르트 광고에서 수지는 “나 오늘 첫키스 할 거야”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지켜주고 싶은 어린아이의 이미지에서 한발짝 나아갔다. ■ ‘섹시’와 ‘귀여움’의 각축 혜리⇔설현 혜리는 2014년 <일밤-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잘 먹고, 민낯으로 씩씩하게 다니는 모습 등으로 호감을 샀다. 교관과의 이별을 앞두고 ‘아잉’이라는 애교 한방으로 단숨에 수지의 바통을 이어받는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혜리의 바통은 다시 1년도 안 되어 설현이 이어받았다. 2012년 데뷔해 영화 <강남 1970> 등에 출연했지만, 스타덤에 오른 건 지난해 한 이동통신회사의 모델로 섹시한 뒷모습을 강조하면서부터다. 그러나 1월 끝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다시 혜리가 청춘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등 ‘섹시’와 ‘귀여움’을 앞세운 두 아이돌 간 엎치락뒤치락 각축전이 이어지고 있다. 설현은 청순한 얼굴 한편으로 ‘섹시’한 몸매를 전면에 내세우며 청춘 아이콘의 자리에 올랐다. 이를 두고는 “몸매를 강조하는 최근의 성적 상업화 경향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진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차세대 청춘 아이콘은 누구? 설현·혜리의 양강 체제에 대한 도전은 벌써부터 치열하다. 에스비에스의 한 라디오 피디는 “청춘 아이콘의 ‘소비’ 주기가 몇년에서 몇개월로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주자는 15살 중학생 이수민이다. <보니하니>(교육방송)를 진행하는 이수민은 성숙한 외모와 똑부러지는 진행 실력, 당찬 성격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이 대상 프로인데 삼촌 팬들도 찾아서 볼 정도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와 걸그룹 ‘여자친구’도 거론되고 있다. 이 피디는 “설현과 혜리 이후 2016년엔 다시 문근영 시대처럼 순수가 강조된 아이콘들이 뜨고 있다”며 “섹시함을 강조하는 걸그룹 과부하 상태에서 빚어진 역전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청춘 아이콘의 굴레 큰 환호를 받지만, 금세 다른 이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청춘 아이콘들의 변신 노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걸그룹이 쏟아지면서 ‘국민 여동생’ 칭호를 누리는 나이도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20대 초반만 되어도 화제의 중심에서 비켜난다. 변신에 대한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문근영은 지난해 드라마 <마을> 뒤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로 더 성장하고 싶은데 ‘국민 여동생’ 타이틀 때문에 틀 안에 가둬지는 것 같아 싫었다”고 말했다. 정점을 맛본 청춘 아이콘들이 후유증을 앓지 않으려면, 스스로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유는 지난해 ‘스물셋’으로 섹시한 무대를 선보였고, 공개 연애도 발표했다. 문근영은 끊임없이 성숙한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혜리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생각하면 힘들다. 당연히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연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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