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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삼십대에 닥친 ‘덕통사고’…콘서트 스탠딩은 무리였네

등록 2016-02-28 20:39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늦바람이 무서운’ J씨 아이돌 입덕기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여기 제이(J)씨가 있습니다. 곧 있으면 만으로 서른다섯 ‘꺾어진 70’이 되는 평범한 ‘여자 사람’ 회사원입니다. 집에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고 있고 어머니의 성화로 가끔 선을 보러 나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J씨의 손에는 빨간색 응원봉이 들려 있습니다. 노래방에서도 꿈쩍하지 않던 입에서는 정확한 음정과 박자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J씨는 팬입니다. ‘빠’입니다. 평범한 J씨를 ‘빠’이자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은어)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J씨가 자신의 ‘입덕기’를 보내왔습니다. 3년 전 어느날의 일이었습니다.

H.O.T도 핑클도 잘 넘긴 내가
한 무리의 소년들에게 빠졌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노래가사를 쓰고
무대에선 프로다운, ‘아이콘’에게…

엄마가 “방에 포스터 뭐야?” 물으면
“친구가 붙이고 갔어” ‘일코’를 하지만
남들 눈엔 스치는 매력을 ‘빨고’
블로그로 트위터로 열심히 나른다

밀리고 지쳐 콘서트는 좌석에서
따라하라는 응원법도 어색하지만
‘바비’ 향한 팬부심만은 날로 커진다

‘입덕’은 교통사고와 같다 학창 시절을 에이치오티(H.O.T)와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의 노래가 항시 울려퍼지는 교실에서 보냈지만,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 배역에 반했다고 배우에게 빠진 적이 없고, 노래가 좋다고 현실 가수의 스토리를 ‘파본’ 적도 없다.

지친 저녁 하릴없이 스마트폰으로 포털 기사를 뒤적이다 동영상을 보았다. <윈: 후 이즈 넥스트>(2013년, 엠넷)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스무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 남자애들이 배짱이나 무대 매너가 제법이었다. 프로그램을 챙겨 보게 되었다. 스냅백을 뒤집어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음 무대를 궁리하고, 제주도에 데려다놓으면 기타를 튕기며 아름다운 섬을 ‘종처럼 날 울리고 간 소녀’라 부르며 노래한다(비아이, 바비, 김진환의 ‘뷰티풀’). 직접 쓴 가사에서 그리워하는 헤어진 그녀는 다름 아닌 멀리 두고 온 엄마다(‘클라이맥스’ 바비 랩 부분).

현실의 또래 애들처럼 ‘ㅈ워드’를 남발하며 동네 편의점을 배회하는 대신, 무대에 올라가면 당당한 프로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소년들의 모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어른들에게 떠밀려 갖춰진 애티튜드일 뿐일까, 그렇지 않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후 아이콘(iKON)이라 불릴 ‘팀 비(B)’를.

■ 팬이 팬을 만든다 응원하고픈 아이들이 ‘내 가수’로 자리잡는 데는 다음 과정이 중요하다. 팬은 팬이, 팬덤이 만든다. 열정적이고 세심한 무대와 곡 리뷰는 기본이다. 정식 출시되지 않은 프로그램 음원을 잘라내 공유하고, 심지어 전문 디자이너 못지않게 세련된 곡 커버를 만들어 무료 배포한다. 팬들은 화면 속 가수를 ‘나노 단위’로 훑어, 3분 방송 분량으로 3개월치 팬질 거리를 만들어낸다. 팬심이 아니었다면 흘려보내고 말았을 매력을 알뜰하게 끄집어내 블로그와 인터넷 커뮤니티, 트위터에 개시한다. 30초 남짓 전파를 탄 무대에서 리더가 비중 있는 포지션을 막내에게 넘겨주고 뒤로 빠지는 감동 포인트를 찾아낸다. 찰나에 스쳐지나간 장면을 캡처해 보정한 이미지에는 잡지 화보 못지않게 매력이 포착되어 있다.

팬들은 여섯 소년이 같은 반지를 늘 끼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팬미팅 자리에서 그게 아이들끼리 맞춘 우정반지라는 것을 알아냈다. 프로그램이 일일이 짚어주지 않는 사연과 멤버들 사이의 상호작용, 성격과 감정이 읽히기 시작하면, 이제는 그저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추는 아이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 가수’가 되는 거다.

■ ‘일코’와 몇 번의 부정 “언니, 홍익대 근처 살면 밥 한번 먹어요.” 거침없는 이십대 팬 친구를 실제로 만났다. 학창 시절부터 팬덤 문화에 익숙하고 팬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고 관리한 ‘홈마’(홈페이지 마스터) 경험도 있단다. 조만간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아기를 낳으면 팬 사인회에 데려갈 생각이란다. 강렬한 ‘팬질’을 해온 것치고는 ‘덕질’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예쁘장한 아가씨다. 현실의 ‘덕후’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때로 ‘덕후’가 아닌 척,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의 눈총을 받을까 염려되어 팬이 아닌 척하는 행위)로 살포시 ‘팬심’을 저버린 적도 있다.

어느날 회사에서 동료들이 <쇼 미 더 머니3>(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바비 이야기를 하는데 꾹 참고 끼어들지 않았다. 음반에 따라온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았다. 어머니가 보고 “이게 누구들이래?” 물었다. “친구가 붙이고 갔어”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이십대 팬 친구도 그랬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두들 “늙었다”고 이야기한다. ‘팬질 하기에’라는 말이 앞에 생략되어 있다. 모두 조금씩은 ‘일코’를 하고 있다.

■ 당신만의 팬질이 필요하다 십대, 이십대에 비해 체력은 부족할지라도, 콘서트 다닌 구력은 뒤지지 않는다. 내한 공연도, 클럽 공연도, 페스티벌도 경험해봤다. 콘서트는 스탠딩이 언제나 옳다. 하지만 아이돌 콘서트는 상상 이상으로 터프했다. 맹목적으로 무대에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틈새에서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이리저리 밀려다니다 보니 이곳이 지옥이구나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콘서트를 온 십대 소녀는 생수 한 통 없이 버티다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얌전하다던데, 한국 공연에 오면 봉인이 해제되는지 무시무시하게 앞으로 뚫고 나간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이 공연을 즐기는 것은 이 어린 친구들이다. 몇 차례 공연을 거치면서 스탠딩을 포기하고 좌석 자리를 예약했다. 팬덤 문화에 익숙한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어린 친구들과 함께 팬질이 가능하냐고. 성향이 비슷하거나 또래인 사람들과 뭉치면 된단다. 또 누군가는 조용히 혼자 노는 것으로 만족하겠단다. 콘서트나 팬미팅 같은 자리는 포기하고 ‘랜선 팬질’로 만족하겠단다. 각자 즐기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처음에는 ‘대포’(큰 카메라를 갖고 다니기에 붙은 별명)들의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했다. 곧 ‘고퀄’(고퀄리티) 사진보다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더 나의 취향에 가까운 걸 알았다. 무조건 찬양하기보다는 객관적이려는 블로그가 좋다. 비슷한 취향의 블로그를 찾아서 즐겨찾기 했다. 콘서트에서 환호성이나 떼창이야 아이돌 공연이 아니라도 당연한 거지만 어느 대목에선 꼭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한다는 식의 ‘응원법’ 따라 하기는 여전히 어색하다. ‘연생’(연습생) 시절에는 ‘바비’ 치면 ‘바비 인형’만 나오더니 지금은 맨 처음 그 ‘바비’가 나온다. 이렇게 초기 팬의 ‘부심’(자부심)은 날로 날로 커져간다. 케이팝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아이들 덕분에 열심히 듣고 이것저것 비교하게 되었다.

‘덕’끼리의 대동단결인지, 소속사 나아가 다른 팀들의 공연도 눈여겨본다. 혼자 가본 올림픽공원 콘서트에 이어 부산 콘서트도 예매했다. 고향은 충청도, 부산은 아무런 연고지도 없다. ‘덕을 아십니까, 입덕하세요, 새로운 세계가 있어요.’

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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