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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돌싱, ‘변두리 사랑’ 아닙니다

등록 2016-02-28 18:54수정 2016-02-28 22:49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중고 아닌 싱글’이라고 말해준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이 아닌 만큼 눈치보거나 재지 않겠습니다.
이전 배우자에게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가볍게 밝게 사랑하겠습니다.

편하게 보시라고 평일밤·주말 황금시간대에 배치했습니다.
지상파 드라마 12편 중 4편, 공감해주세요.
“‘돌싱’은 중고가 아니라 에프에이(FA·프리 에이전트: 자유계약선수)로 돌아온 싱글일 뿐”이라고 한미모(장나라)는 외친다. 한미모는 누구인가. 로맨틱 코미디인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한번 더 해피엔딩>(수·목 밤 10시)의 여자 주인공이다. 이혼한 뒤 ‘한번 더 사랑’을 하고 있다.

한미모의 절규에 가까운 이 대사는 요즘 드라마가 돌싱(이혼하고 다시 솔로가 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올해 부쩍 돌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늘었다. 3월 첫째주 방영하는 드라마를 기준으로 <아이가 다섯> <결혼계약> 등 지상파 3사의 평일 밤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 총 12편 중 4편이 돌싱의 이야기다. 이혼한 뒤 혼자가 되어서도 꿋꿋하게 잘 사는 돌싱의 이야기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젊은층을 겨냥하는 로맨틱 코미디에서까지 돌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1~2년 전부터 본격화한 이례적인 현상이다.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사진 각 방송사 제공
■ 주인공에 조연까지 다 갔다 왔네! 주인공 중 한명이 돌싱이던 것에서, 이제는 남녀 주인공에 조연까지 모두 돌싱이 됐다.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한미모를 두고 다투는 남자 주인공들도 돌싱이다. 한미모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친구이자 인터넷매체 기자인 송수혁(정경호)은 아내와 사별하고 초등학생 아들과 사는 ‘싱글대디’이고, 송수혁의 친구이자, 또다른 남자 구해준(권율)은 이혼했다.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한국방송2 토·일 저녁 7시55분)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싱글대디와 ‘싱글맘’이다. 친구와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싱글맘 안미정(소유진)과,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이와 사는 싱글대디 이상태(안재욱)가 인연을 맺는다.

한쪽이 돌싱인 경우도 많다. 3월5일 시작하는 정통멜로 <결혼계약>(문화방송 토·일 밤 10시)에선 어린 딸과 사는 싱글맘 강혜수(유이)가 까칠한 재벌남 한지훈(이서진)과 사랑에 빠진다. 같은 날 시작하는 로맨틱 코미디 <마이 리틀 베이비>(문화방송 토·일 밤 12시30분)에서는 형사인 주인공 차정한(오지호)이 죽은 누나를 대신해 조카를 맡게 되는, ‘어싱’(어쩌다 보니 싱글대디)까지 등장한다. 28일 끝난 <애인 있어요>(에스비에스)에서는 이혼했던 최진언(지진희)과 도해강(김현주)이 다시 사랑을 확인했다.

2006년 <연애시대> 등 돌싱 남녀가 주인공인 미니시리즈는 오래전에도 있었지만, 주로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재결합하는 ‘꺼진 사랑 다시 보기’식의 전개였다. 2014년 돌싱을 로맨틱 코미디로 상큼하게 다뤄 관심을 끌었던 <앙큼한 돌싱녀>(문화방송)도 연하남과 잘되는 듯하더니 결국 전남편과 사랑을 재확인했다. 요즘 돌싱들은 전남편(혹은 아내)한테 돌아가지 않는다. <애인 있어요>가 재결합을 다루기는 했지만, 드라마는 대부분 이들의 새로운 사랑, 즉 재혼 이야기에 집중한다.

MBC '마이 리틀 베이비'. 사진 각 방송사 제공
MBC '마이 리틀 베이비'. 사진 각 방송사 제공
■ 시청층·사회인식 변화가 재혼 이끄네 드라마가 돌싱의 재혼에 귀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를 관계자들은 지상파 시청층의 변화에서 찾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는 “지상파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이 주부 혹은 중장년층이 되면서,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와닿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상큼발랄해진 돌싱들의 재혼 미니시리즈는 ‘어른 시청자’에 맞춘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그는 또 “예전에는 시청자들이 환상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는 드라마를 선호한다”며 “지상파에서 돌싱은 요즘 드라마의 성공 법칙인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기에 적절한 소재”라고 말했다. <아이가 다섯>의 김정규 피디도 제작발표회에서 “두 아이를 둔 사별한 남자와 세 아이를 둔 이혼한 여자의 재혼 얘기를 진솔하게 다루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전 돌싱 이야기에 견줘 현실적인 고민들이 제법 사실적으로 담겼다.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재혼업체를 운영하는 한미모를 통해 재혼의 조건 등이 적나라하게 등장했다. <아이가 다섯>에서 싱글맘이 멋진 총각을 만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싱글대디와 결혼하는, 좀더 현실가능한 이야기를 다룬다. 남편과 이혼한 직후 안미정이 미련 없이 돌아선 듯하다가도 이내 아이들을 위해 “내가 잘못했으니 돌아오라”고 울며 전화하는 모습 등 싱글맘들의 심경 변화 등도 눈길을 끈다.

한 드라마 작가는 “사랑만 하면 됐던 싱글들과 달리 여러 조건으로 장애물에 부딪혀야 하는 돌싱들의 재혼 이야기는 드라마적으로도 사건과 갈등이 반복되는 매력적인 소재”라고도 했다. <아이가 다섯>에서 딸을 잃고 사위를 아들 삼아 함께 사는 장인과 장모가 이후 사위의 재혼에 난색을 표할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전개다. 젊은 사랑보다 솔직한 돌싱들의 적극적인 사랑은 빠른 전개를 요구받는 요즘 드라마에 최적화된 소재라는 의견도 있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한미모는 스킨십에 지지부진한 구해준을 유혹하려고 집에 불러 와인을 마시는 등 온갖 작전을 짠다.

■ 돌싱을 당당하게 ↔ 환상 유발 방송 관계자들은 “예전 같으면 돌싱의 이야기를 미니시리즈로 편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돌싱에 대한 달라진 사회 분위기도 이런 드라마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이혼이 늘면서 돌싱이 많아졌고, 그들의 재혼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이혼 건수는 11만5510건으로 2011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30~40대의 이혼율이 늘었고, 이혼이 늘면서 재혼도 증가해 2014년 전체 혼인 건수 중 재혼 비율이 21.5%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드라마들이 돌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을 돌싱이라고 밝힌 한 블로거는 누리집에 “<한번 더 해피엔딩>과 같은 돌싱 소재의 드라마가 방송에서 자주 나와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돌싱에 대한 시선도 바뀌고, 돌싱들도 당당하게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설 수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드라마가 돌싱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준다는 우려도 있다.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아이 유모차를 끌고 대학교 강의를 듣는 정경호를 보고, 후배가 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돌싱들은 직업도 외모도 성격도 번듯하다. 한 인터넷 싱글맘 카페에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돌싱들은 왜 이리도 쿨하고 상처 없는 듯 맑은지 모르겠다”거나 “나에게도 그런 인연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얻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사실에 더 우울해진다”는 공방이 오간다. 전문가들은 싱글맘과 싱글대디라는 설정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며 세심하게 다뤄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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