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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시청률 죄인’은 최선 다할 권리도 없나요

등록 2016-02-02 19:06수정 2016-02-02 21:32

시청률 정체땐 제작비 아껴라 압박
기대작 ‘육룡이 나르샤’도 예외없어
결과적으로 드라마 질 떨어뜨려
“내용이 이랬어야지.” “제작비라도 아껴라.”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최근 사공이 많아졌다. 드라마는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데, 시청률이 더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드라마국 간부들의 ‘잔소리’가 시작된 것이다.

2일까지 <육룡이 나르샤>는 50회 중 36회가 방영됐다. 1회 시청률 12.3%(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부터 두자릿수를 기록해 20%를 넘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줄곧 10~15%에 머물렀다.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다른 드라마에 견주면 잘 나온 편이지만 내부의 기대에 못 미친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더이상 오를 기미가 없자, 윗선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간부들의 간섭은 비단 <육룡이 나르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에다가, 워낙 기대작이었고 성공한 작품이 많은 김영현, 박상연 작가라서 한동안 두고봐왔던 듯하다”며 “대다수의 드라마는 중반 정도에서 시청률이 정체되어 있으면 윗선의 압박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직접 제작비를 대고 자체 제작하는 경우는 제작비를 줄이라는 압박이 가장 심하다. 제작비를 아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야외 촬영 일수를 줄이는 것이다. <한국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야외에서 하루 촬영하면 적어도 700만원 정도가 든다. 야외 촬영을 줄이고, 방송사 자체 세트장에서 촬영하면 시간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조 출연자 등 단역이 필요한 장면을 없애고, 조연들을 빼는 건 단골 방법이다. 이 피디는 “사극의 경우는 전쟁 장면을 없애는 등,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장면부터 없앤다. 단역을 빼고 꼭 필요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조연 배우들도 하차시킨다. 얼굴이 알려진 조연 배우들만 해도 300~500만원은 받기 때문에 이들이 한 회만 나오지 않아도 야외 촬영을 하루 빼는 것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대부분 프로듀서를 통해 작가와 피디한테 전달하지만, 작가가 유명하지 않은 경우 간부가 직접 전화해 작가한테 “돈 많이 쓰는 장면을 아예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러브신을 넣고, 주연 배우 중심으로 대본을 고치는 등 작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도 일어난다. 소속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중간에 피디를 교체하려다가 배우들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특히 기대작이 시청률이 안 나오면 홍보담당자들을 세워놓고 선생님이 학생을 나무라듯 하는 황당한 일도 일어난다”고 말했다.

간부들의 간섭은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질을 떨어뜨린다. 몇년 전 방송한 한 장르드라마는 “돈 많이 쓰는 장면을 빼라”는 간부의 압박 때문에, 애초 계획대로 촬영을 마무리 하지 못했다. 장면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이 드라마는 막판으로 갈수록 내용이 엉성해진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이런 내막도 있었던 것이다. 이 드라마 관계자는 “우리 드라마 때문에 방송사가 손해를 본다고 하니, 간부가 원하는대로 돈 드는 신을 빼는 등 내용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냥 무사히 끝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간부의 압박은 현장 스탭들을 위축시킨다. 힘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제작진의 기운도 뺀다. 한 드라마 스태프는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용팔이>처럼 개연성도 떨어지는 등 작품성이 한참 뒤처지는 드라마도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온갖 지원에 연장까지 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현장 제작진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걸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돈 계산만 하는 간부들과 달리 제작진은 오늘도 강추위와 싸우고 있다.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드라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권리도 없는 걸까요?” 한 피디의 외침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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