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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쌀집아저씨가 중국서 꺼낸 카드는 ‘효’

등록 2016-01-24 20:47수정 2016-01-25 17:15

중국 현지에서 외주 제작사를 차리고 첫 작품인 <폭풍효자>를 선보이는 김영희 피디가 방송에 앞서 19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비앤아르(B&R) 제공
중국 현지에서 외주 제작사를 차리고 첫 작품인 <폭풍효자>를 선보이는 김영희 피디가 방송에 앞서 19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비앤아르(B&R) 제공
김영희 피디의 ‘중국 진출기’
“방송은 잘 나왔네요. 하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밝다. 특유의 하회탈 미소가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진다. 지난 23일은 중국에 진출한 ‘김영희’라는 브랜드의 성공 여부가 점쳐지는 운명의 날이었다.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등 한국 ‘공익 예능’의 새 장을 열며 <문화방송>(MBC)의 간판 스타 피디로 손꼽히던 그가 중국에 제작사를 차리고 처음 납품한 12부작 관찰예능프로그램 <폭풍효자>(토 밤 10시)가 이날 중국 메이저방송사의 하나인 <후난위성티브이>에서 첫방송을 했다. “1%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중국 시장에서 <폭풍효자> 1회 시청률은 1.59%(시청률 조사기관 CSM)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1회와 관계없이 2회 시청률이 더 뛰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도전의 시작을 사흘 앞둔 지난 20일 김영희 피디를 중국 베이징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중국서 외주제작사 차려 ‘도전’
후난위성TV에 ‘폭풍효자’ 납품
첫회 현지반응 좋아 성공 기대

제작비 400억…스태프 600명…
한국 방송사 예능국 1년 예산
“제작사 많아 한국은 저비용 경쟁
자본력 큰 중국에 스타PD 몰릴듯 ”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중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전 출연진이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비앤아르(B&R) 제공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중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전 출연진이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비앤아르(B&R) 제공
■ 무모한 도전 김영희 피디의 중국 진출은 ‘모 아니면 도’였다. 그는 한국 예능 피디들의 중국 진출 바람을 타고 지난해 4월, 29년간 몸담았던 <문화방송>에 사표를 던졌다. 그의 진출은 방식이 조금 달랐다. 방송사가 포맷을 수출한 이후 해당 국가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까지 한국 피디가 공동제작에 참여하던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피디 혼자 중국 제작사와 고용 계약을 맺기도 한다. 그는 안전한 길을 벗어나 중국 회사의 투자를 받아 현지에 외주 제작사 ‘비앤아르’(B&R)를 직접 차렸다. 중국 자본과 한국 인력이 융합한 새로운 형태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모하다 싶어요. 투자사가 확실히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표를 냈는데, 꿈처럼 일이 술술 풀렸어요. 중국 제작사의 제안도 많았지만, 혼자 잘되는 게 아니라, 중국을 가되 저작권도 갖고, 후배들의 길도 열어주는 확장 가능성이 더 많은 형태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중국은 대부분 외주 제작사가 프로그램을 납품해 프로덕션이 제작 여건만 잘 갖추면 가능성이 무한하다. 이병혁 피디 등 후배 피디 6명이 그를 따라 비행기를 탔다.

“중국인의 의식과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공익 예능’ 콘텐츠로 중국의 첫 문을 두드렸다. 첫 작품인 <폭풍효자>는 ‘효’를 강조한다. 그는 “효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인간만이 갖고 있는 덕목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효를 내세운 예능이 없고, 관찰 예능도 처음 시도된다는 점에서 방송사의 기대도 크다. 하루 전인 19일엔 중국에서는 이례적인 대규모 제작발표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중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영희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피디도 “<나는 가수다>의 중국 리메이크가 성공했고, 2011년 중국에 와서 플라잉 피디로 참여한 것들이 이번 일을 진행하는 데 믿음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폭풍효자>는 <후난위성티브이>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외주제작을 맡긴 프로그램이다. 중국은 외주 제작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주로 트는데, <후난위성티브이>는 그동안 자체 제작만 해왔다.

■ 왜 중국인가 그는 중국 시장의 매력은 자본력이라고 했다. <폭풍효자>도 제작비만 400억원 정도다. 한국 지상파 방송사 예능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 12회를 만드는 데 참여한 스태프만 600명이다. “한국에서는 뭘 하고 싶어도 제작비가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기술과 돈과 인력이 다 되니 피디로서는 너무 좋은 거죠.” 연예인 6명의 고향집에 가서 생활하는 <폭풍효자>도 한집에만 카메라 50~60대(한국은 10대 남짓)를 설치했다. “고향집에 가면 다른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그럼 그 사람한테 있을 집을 구해주고, 고향집 내부를 연예인들이 예전 살던 공간으로 똑같이 개조하고 촬영이 끝나면 원상복구시키는 데만 엄청난 돈이 들어요. <폭풍효자>의 핵심은 예전 집 내부를 재현한 것인데, 제작비가 없으면 그걸 못하는 거죠.”

채널만 3000여개에 이르는 중국 방송시장 규모는 200조원(한국 약 15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공하면 제작사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거대하다. 김 피디는 “잘만 하면 1조원대를 벌어들이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며 농을 쳤다. 능력만 있으면 대우받는 제작 시스템이 아이디어가 풍부한 한국 피디들의 도전 의욕을 부추긴다. 방송국사가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한국과 달리 외주 제작사의 권리가 크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중국의 외주 제작사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저작권과 판권을 소유하고 광고 계약도 알아서 해요. 방송사는 외주 제작사와 계약할 때 몇퍼센트를 떼어 받는 식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죠. <폭풍효자>의 저작권과 판권도 우리가 갖고 있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만 하면 방송사들이 오히려 줄을 서게 됩니다.”

그러나 정서 등 문화에서 오는 시행착오나, 수많은 중국 제작인력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 같은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정서를 몰라 실패하는 피디들도 있지만, 나는 큰 문제를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중국에 오면 중국의 정서를 따라야 해요. 그들이 원하는 걸 일단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해요.” ‘쯔위 사태’ 역시 중국 정서에 무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바라봤다.

■ 인력 유출 우려도 실력 좋은 피디들이 앞다투어 중국으로 달려가면서, 한국 방송계에서는 인력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포맷을 팔던 것에서 공동제작을 넘어 김영희 피디가 성공하면 현지에서 자체 납품하는 일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3~4명의 피디가 더 김영희 피디의 중국 회사로 옮길 예정이다. 김 피디는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일하는 환경을 후배들한테 이야기해주면 다들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 해요.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대등한 관계에서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 중국같이 국가나 민족으로 나누면 안 돼요. 지금 시대에는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은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제작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저가 경쟁을 하다 보니 제작비 규모가 작아지면서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된다. 퇴출될 사람은 퇴출되고 살아남을 사람은 살아남고, 어떻게든 빨리 정리가 되어야 한국도 한국 시장만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회사를 향하여 중국에서 만난 그에게선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소풍 전날 밤 초등학생처럼 신이 나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회의 탁자에서 하루를 보냈을 그는 중국에서 현장을 돌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일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폭풍효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벌써 가을에 선보일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새로 입사하는 피디들이 이 프로젝트를 맡는다. “중국을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회사를 꿈꿉니다. <폭풍효자>가 성공하면 방송사와 함께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영상 콘텐츠 시장에 부스를 만들어 판매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이 모든 일들은 <폭풍효자>가 성공해야 가능하다.

베이징/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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