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슈가맨을 찾아서 등
추억속 스타들 무대위로 불러내
2~3년 전부터 ‘과거 소환’ 바람
“대중문화 다양화 일조” 시각도
추억속 스타들 무대위로 불러내
2~3년 전부터 ‘과거 소환’ 바람
“대중문화 다양화 일조” 시각도
지난 9월20일 방송한 <일밤-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문화방송·이하 <복면가왕>)에 출연한 복면가수 ‘황금박쥐’가 가면을 벗는 순간 스튜디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누구일까 추측이 난무했는데 알고 보니 1980년대 ‘하이틴 스타’ 김승진이었다. 수염이 거무스름하게 난 40대 중반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관객과 패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함께 추억으로 가는 기차에 동승했다.
최근 1980~90년대 활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추억의 연예인들을 찾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40대 이상 솔로들이 여행을 떠나는 <불타는 청춘>(에스비에스)의 지난달 27일 방송에는 1993년 개봉한 영화 <가슴 달린 남자>로 단번에 스타로 떠올랐던 배우 박선영이 출연했다. 그동안 김완선, 김국진 등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주로 나왔는데, 오랫동안 대중의 시선과 거리를 두고 있던 박선영의 등장은 당시 그를 보며 가슴 설레었던 남자들의 그리움을 불렀다. 24일에는 <복면가왕>에서 화제를 모은 김승진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예전 노래를 2015년 버전으로 다시 부르는 <슈가맨을 찾아서>(제이티비시)에는 매주 추억의 스타가 한 명씩 등장한다. 1992년 ‘눈 감아봐도’로 인기를 얻은 당시 고교생 가수 박준희와 1994년 ‘너 하나만을 위해’로 데뷔하자마자 여심을 흔들었던 구본승이 화제를 모았다. 1993년 ‘아라비안 나이트’를 부른 김준선, 1993년 ‘하얀 겨울’로 데뷔한 미스터큐, 1998년 데뷔한 그룹 이글 파이브의 멤버 리치도 최근 출연했다. <티브이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추억의 스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소방차, 박남정 등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이들을 곱씹게 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는 ‘노스탤지어’ 바람은 텔레비전에서는 2~3년 전부터 불었다. 1985~1991년 연예계를 추억하는 <근대가요사 방자전>(티브이엔·2014년)과 추억의 연예계를 들추는 <그 시절 톱10>(티브이엔) 등이 2014년 전파를 탔다. 최근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그 시절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2015년 무대 위에 등장시키고 있다.
시청자들은 반가운 마음에 몰입한다. 내가 좋아했던 스타가 왜 티브이에서 사라졌는지 해묵은 궁금증이 이제야 해소된다. 구본승, 김승진을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과 그들의 변한 모습을 보는 호기심을 넘어 추억의 스타를 타고 지난 시절의 나와 마주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야간자율학습 때 구본승의 노래를 몰래 듣다가 선생님한테 혼났던 기억 등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는 등 추억을 곱씹는 반응이 많다.
시청자의 환호에 가수들도 힘을 받는다. 억누르고 있던 연예 본능을 다시 끄집어내기도 한다. 김준선은 <슈가맨>에서 이엑스아이디(EXID) 하니와 불렀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리메이크 버전을 발표하고 다시 활동한다. 김승진은 <복면가왕>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음반 제작이 미뤄져 10년째 녹음만 하다 활동을 제대로 못했다. 앞으로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음악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추억의 스타를 소환하는 프로그램 역시 티브이의 주요 시청층인 40~50대를 겨냥한 전략이지만, 아이돌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가요계와 인기를 얻고 사라지는 ‘스타 유효기간’이 짧아진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화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상혁 <불타는 청춘>피디는 “다매체 채널이 되면서 예전처럼 톱스타의 뻔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개성 강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말했다. 1980년대나 1990년대는 기획사에서 찍어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대로 노래를 만드는 등 개성 강한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이들이 지금 다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도 다양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예능에서는 좋은 콘텐츠로 주목받는다. 이창태 <에스비에스>예능 국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80~90년대 사랑 방정식 등의 이야기에 신선함을 느끼더라”며 “이전 추억 관련 콘텐츠와 달리 이들의 개성 강한 이야기가 젊은층에도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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