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좀비가 나타났다!
2015년 10월의 마지막날 서울 용산역에 좀비 떼가 출몰했다. 퀭한 눈에 피범벅 된 ‘살아 있는 시체’들이 역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미국 애틀랜타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가 용산까지 번진 걸까. 좀비 피를 덮어써야 하나. 숨을 안 쉬면 살까.(좀비 드라마에 나오는 살아남는 방법들)
그럴 필요 없다.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그린 미국드라마 <워킹데드>(폭스채널 월 밤 11시)가 시즌6 방영을 기념해 핼러윈 데이에 마련한 ‘좀비 페스티벌’이다.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드레스 코드인 ‘좀비’ 분장을 해준 것이다. 팬들은 주최 쪽에서 ‘고용’한 좀비들과 사진도 찍고, <워킹데드> 원본 영상도 보고, 디제잉에 맞춰 춤도 추고, 다이나믹 듀오의 공연도 즐기는 등 오늘 하루 좀비로 변했다.
<워킹데드>는 126개국에 방송될 정도로 좀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10월25일 미국 방영분은 1820만명이 봤다. 한국에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2000여명이 집결했다. <워킹데드>는 현지에서는 좀비를 트럭에 태워 도시 곳곳에 풀어놓는 게릴라성 이벤트도 종종 열지만, 한국에서는 없었다. 목말랐던 한국의 좀비 ‘추종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결했다. 입가에 섬뜩한 피 분장을 하고 나타난 차효정(21)씨는 “평소에는 보기 드문 이런 행사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함혜민(36)씨는 “드라마 관련 행사를 넘어 이런 행사를 축제처럼 즐길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드라마 관련 이벤트가 하나의 문화 축제로 자리잡았다. <슬리피 할로우>는 2013년 시즌1 방영을 앞두고 공원에 세트장을 재현해놓고 극에 나오는 머리 없는 기마 경관이 시민들과 이벤트성 칼싸움을 하도록 했다. <닥터후>는 방영 때마다 전화박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디스’를 거리 곳곳에 배치해놓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폭스채널> 김혜영 국장은 “미국 방송사들이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려고 프로모션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문화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시작 단계다. <막돼먹은 영애씨>가 주인공 ‘이영애’ 이름으로 소셜네트워크(SNS)를 운영하거나, 마지막 방송을 팬들과 함께 보는 등 소소한 이벤트는 열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는 “미국처럼 시즌제도 아니고, 아직은 축제라는 문화가 생소한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워킹데드> 페스티벌이 열리던 이날도 우연히 지나가던 한 시민이 “밤에 시끄럽게 뭐하는 짓인지”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에 움츠러들 좀비들이 아니다. <워킹데드> 한국 방영 5년 만에 집결한 한국의 좀비들은 모처럼 자신들을 세상에 드러내며 더할 나위 없는 밤을 즐겼다. 좀비는 시끄러운 소리에 집결한다더니,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 곳곳을 어슬렁거리던 좀비들은 밤 9시 신나는 디제잉 소리가 들리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산한 밤기운에 스멀스멀 움직이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좀비 떼였다. <워킹데드> 속 릭 일행이 소식 듣고 달려오는 건 아닐까. 김혜영 국장은 “매년 꾸준히 개최해 한국에서 문화 축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폭스채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