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유재석에 이어 강호동까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을 쥐락펴락하는 ‘톱 진행자’들이 모두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발을 디뎠다. 유재석은 지난 8월 <제이티비시>(JTBC)의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으로, 강호동은 12월 방송 예정인 제이티비시의 <오빠집>으로 종편행을 택했다. 이경규는 2014년 4월 제이티비시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에 이어, 올 9월부터 <티브이(TV)조선>의 <이경규의 진짜 카메라>를 진행하고 있다. 지상파 전성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들의 종편 출연을 두고는, ‘톱 엠시’ 시대가 저물고 ‘기획과 연출 시대’로 접어든 예능프로그램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 유재석·강호동 시대 저무나?
톱 진행자들의 이동에 대해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종편이 모셔간 것 같지만, 실상은 이들 역시 살 곳을 찾아 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상파에서 유재석과 강호동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년 이들이 새로 맡았던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저조했다. 유재석의 <나는 남자다>(한국방송2)는 마지막회 시청률이 5.8%였다. <해피 투게더>(한국방송2)도 낮은 시청률에 지난 22일 포맷을 바꿨지만, 첫 방송이 3.7%에 그쳤다. 강호동은 더 심각하다. 2011년 세금 탈루 사건으로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가 복귀한 이후 새로 맡은 프로그램이 대부분 3개월여 만에 폐지됐다. 2013년 <달빛 프린스>(한국방송2)는 3%대, 2014년 <별바라기>(문화방송)와 2015년 <투명인간>(한국방송2)은 2%대였다. 2013년부터 하고 있는 <우리동네 예체능>(한국방송2)도 4%대다. 이경규도 <풀 하우스>, <경찰청 사람들>, <나를 돌아봐>가 별다른 화제를 낳지 못했다. 또 다른 지상파 예능 피디는 “이제는 이들의 출연이 시청률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호동은 지난 3월 <우리동네 예체능> 기자간담회에서 “케이블이나 종편도 내가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 톱 엠시 의존→포맷 시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유재석-강호동’ 시대는 왜 저물게 됐을까. 피디들은 “예능의 판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리얼 버라이어티나 토크 프로그램의 인기가 시들고, 관찰 예능이나 일반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이들의 설 자리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 케이블 방송사 예능 피디는 “톱 진행자를 섭외해 놓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아니라, 기획에 따라 적당한 출연자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비예능인이 중심이 되고 진행은 거드는 시대에 굳이 몸값 비싼 톱 진행자를 기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상파 예능 피디는 “유재석과 강호동은 여러 출연자들을 이끌며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만능 진행자지만, 요즘은 19금이나, 깐죽 캐릭터 등 색깔있는 진행자를 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지상파 피디들은 “유재석이 회당 1000만원대인 지상파 출연료의 두배가 넘는 2500만원까지 받을 걸로 보이는 등 출연료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파격적인 효과? 글쎄
스타 엠시의 이동에 종편은 고무된 표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동이 방송계에 지각 변동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유재석이 진행하는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도 정규 편성 시청률이 1.6%로, 이름값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이경규의 진짜 카메라>도 1%대다. 이경규가 앞서 출연한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는 시청률 부진으로 2개월만에 폐지됐다.
‘국민 엠시’라는 묵직한 타이틀이 다른 진행자에 견줘 자유로운 변신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예능 피디는 “신동엽이 19금 소재를 종편과 케이블에서 마음껏 펼치며 자신만의 색깔을 그렸지만, 유재석은 국민 엠시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파격 변신을 시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오빠집>도 남자들의 아지트에서 다양한 놀이와 에피소드를 선보이는 콘셉트로 지상파에서의 강호동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예능 피디는 “신동엽처럼 두 엠시도 종편에서 성공하려면 지상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