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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뻔해도…아픈 남자에 아프다, 여자는

등록 2015-10-18 21:07수정 2015-10-18 21:32

요즘 드라마에는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남자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 의 한 장면.  각 방송사 제공
요즘 드라마에는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남자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 의 한 장면. 각 방송사 제공
드라마 남성은 왜 죄다 아픈 걸까

남자는 비 오는 날 차를 타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어릴 적 비 오는 날 교통사고로 엄마가 죽는 모습을 목격한 뒤 생긴 트라우마(정신적 후유증)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지켜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자에겐 ‘아픈 남자’가 아프다.

방영중인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속 지성준(박서준)은 지난 충격에서 받은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아픈 건 지성준만이 아니다.

요즘 드라마 속 남자들은 죄다 아프다. 마음속 생채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한겨레>가 올해 방송한(종영 기준) 지상파 3사 월화·수목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 49편을 조사했더니,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거나, 어릴 때 기구한 사연이 성격이나 인생에 영향을 끼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32편이나 됐다. 이전에도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있었지만, 최근에는 주말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된 모양새다.

올해 방송 드라마 49편 조사해보니
사건·사고 충격이든 출생비밀이든
정신적 후유증 남성 주인공 수두룩

여성의 보호본능 겨냥 장치인듯
“시청률 높이려 천편일률적” 지적

남자 주인공이 트라우마로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장면이 등장하는 작품만 12편이나 됐다.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에스비에스)의 소정우(연우진)는 7년 전 지하철 사고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지하철을 잘 못 탄다. <미녀의 탄생>(에스비에스) 한태희(주상욱)는 어릴 때 공장에 불이 나 아버지를 잃은 사건으로 당시의 기억을 잃었고,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며 트라우마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하이드 지킬, 나>(에스비에스)의 구서진(현빈)도 어릴 때 납치 사건과 관련된 트라우마로 이중인격이 됐다. 방영 중인 <한국방송2>(KBS2)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의 강훈재(이상우)는 어릴 때 겪은 어떤 기억 때문에 폐소공포증을 앓는다.

트라우마라고 단정 지은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어떤 사건으로 남자 주인공의 성격이 변하고 삶의 목표가 바뀐 경우가 대다수다. <용팔이>(에스비에스)의 김태현(주원)은 브이브이아이피(VVIP) 수술에 의사들이 불려가는 바람에 수술을 받지 못한 엄마가 죽자 돈을 좇는 인물로 변한다. 혼외 자식 등 출생의 비밀도 많고(<장밋빛 연인들> 등), 아이가 죽은 아픔(<애인있어요>) 등을 안고 살기도 한다. <복면검사> 하대철(주상욱)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복면을 쓰고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악인둘을 물리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드라마 속 남자들은 하나같이 ‘사연 덩어리’다.

드라마 속 남자들은 왜 죄다 아플까. 드라마를 보는 주요 시청자인 여자들이 ‘남자들을 병들게 한다’. 한국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내면의 아픔을 지닌 남자 주인공은 여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드라마를 보는 여성 시청자들이 남자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자한테 더 끌린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한 외신 보도도 있다. 아픈 남자들은 <가면>(에스비에스) 속 최민우(주지훈)처럼 재벌 아들이거나(9편), 전문직(<오만과 편견> 등 11편) 등 직업도 좋고 잘생긴 이른바 ‘완벽한 인물’인데, 모두 마음을 다친 이후 까칠한 성격으로 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니시리즈를 집필했던 한 드라마 작가는 “남자들은 밝은 성격의 여자 주인공을 만나 상처를 치유한다. 무한 긍정의 여자 주인공이 남자를 변화시키면서, 여성 시청자들한테 ‘내가 저 남자를 바꿀 수 있다’는 판타지를 심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가 많이 등장하면서 아픈 남자가 늘었다. 남자의 아픔은 여자 주인공과 가까워지기 위한 도구로 요긴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도로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고 빗속에 혼자 앉아 있는 지성준을 김혜진(황정음)이 도와주면서 둘 사이 마음의 벽이 조금씩 사라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장르 가리지 않고 남자들이 아픈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드라마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뻔한 공식에 끼워 맞춘 진부한 설정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청률을 위해 천편일률적인 뻔한 공식을 따르다 보면 결국 나아가 한국 드라마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상파의 한 간부급 피디는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방송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이미 검증된 안전한 장치로 실패하지 않으려는 안이함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실험적인 시도를 하자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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