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유일 KBS ‘드라마 스페셜’
고정방송시간대 없는 메뚜기 신세
1년간 15편 띄엄띄엄…투자로 봐야
고정방송시간대 없는 메뚜기 신세
1년간 15편 띄엄띄엄…투자로 봐야
“단막극을 되살려주세요.”
2008년 4월 <한국방송>(KBS)이 봄 개편과 함께 30년간 이어진 단막극 <드라마 시티>를 폐지하자, 피디들은 힘을 합쳐 ‘단막극 부활팀’을 꾸렸다. 보고서를 작성해 경영진을 찾아가 설득한 지 2년 만인 2010년 5월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심폐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겨우 되살아난 단막극도 계속 가시방석 위에 올라 있었다. <드라마 스페셜> 팀은 다음해 예산을 정하는 이맘때가 되면 또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호시탐탐 단막극을 폐지하려는 경영진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결국 2015년에는 고정 편성 시간대마저 사라지고 1년에 15편을 드문드문 내보내는 신세가 됐다. 15편 중 4편은 3~4월, 5편은 7~8월에 방송했다. 나머지 6편은 10월24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내보낸다.
경영진이 단막극을 벼랑으로 내모는 가장 큰 이유는 ‘광고가 붙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단막극은 정규편성했던 2014년에도 주로 밤 12시께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용팔이>처럼 피피엘(PPL·제작협찬)을 받아 대놓고 업체 홍보를 해주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광고주가 선호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경영진이 고정 편성 시간대를 없애버려 수익 창출은 더 힘들어졌다. <한국방송> 드라마 관계자는 “누가 나오고, 언제 방송하고, 시청률은 어땠는지 등을 예측해 광고를 판매하는데, 고정시간대도 없고 드문드문 나오니 예측조차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에는 광고 수익이 1회당 평균 4000만원이었는데, 2015년에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아이피티브이(IPTV) 등으로 판매하는 2차 수익도 2014년에는 1회당 평균 300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미미하다. 1회당 제작비는 미술비 등을 제외하고 약 1억원에 이르니, 회당 수천만원 손해를 본 셈이다.
그렇다면 방송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단막극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일까? 단막극을 두고 수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촌극이라는 지적이 많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단막극은 당장 수익으로 따질 게 아니라, 미니시리즈 등 장편의 성공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미니시리즈에 적용하기 전 실험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제작비가 수백억원까지 치솟는 미니시리즈는 검증된 소재와 형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막극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재의 시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실제로 단막극에서 시도했던 다양한 실험이 미니시리즈에 적용되기도 했다. 4부작, 8부작 등 형식을 다양하게 변주했고,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스비에스) 등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동성애 주인공을 등장시키기 전에 처음으로 이 소재를 다룬 것도 단막극이었다. 올해 8월14일 방송한 <드라마 스페셜-라이브 쇼크>는 미니시리즈에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좀비물’을 방영해 화제를 모았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스비에스)를 연출했던 안판석 피디는 2006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단막극에서 시험삼아 내보낸 뒤 보태고 다듬어 미니시리즈 소재로 사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드라마가 발전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은 2003년 단막극으로 방송한 <드라마시티-낭랑18세>를 2004년 미니시리즈로 선보인 바 있다.
신인 작가와 배우를 발굴하는 양성소로서의 의미도 크다. <정도전>의 정현민, <비밀>의 유보라 외에도 노희경, 김은숙 등 실력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 단막극 극본 공모를 통해 발굴됐다. 지난 4월 방송돼 화제를 모은 미니시리즈 <앵그리맘>(문화방송)을 집필한 김반디 작가도 2007년 한국방송 단막극 공모에 당선돼 2011년 <드라마시티-당신이 머무는 자리>로 데뷔했다. 한국방송은 극본 공모를 통해 1989년부터 한 해 5~7명씩, 지금껏 160여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올해 공모에도 2714편이 몰리는 등 매년 미래의 스타 작가들이 꾸준히 문을 두드린다. 윤석진 교수는 “신인 작가들의 도전이 반향을 일으켜, 기성 작가들에게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문화방송) 등 단막극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선균은 2006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단막극을 통해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 대본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니시리즈와 달리 인물의 전체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 배우가 능동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막극의 이런 장점들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고정 편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드라마국 안팎에서 나온다. <드라마 스페셜>의 홍석구 책임피디(시피)는 “시간대가 고정되어 있어야 다양한 실험도 할 수 있는데, 현재는 한 해 15편밖에 못 만드니까, 소재나 형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광고 수익을 내려면 고정된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내림세이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제작진도 무턱대고 단막극의 존재 가치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홍 시피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드라마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간서치열전>을 티브이 최초로 포털사이트에서 먼저 내보낸 뒤 방송하는 실험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홍 시피는 “단막극이 연속극이나 미니시리즈에 영향을 주는 선순환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신선한 소재, 작가와 배우의 발굴 등 단막극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엔 단막극을 매주 볼 수 있을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KBS ‘드라마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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