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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 개그인데, 내 개그가 아니라니…‘저작권 없는’ 개그맨들

등록 2015-09-06 19:06수정 2015-09-06 23:01

KBS, 중국에 개콘 판권 판매
시청률 따라 수익 배분 받았지만
아이디어 짜낸 개그맨은 권리 없어
광고에 무단 사용돼도 못 막아

최근 ‘개그맨 저작권 찾기’ 움직임
일본에선 개그맨·소속사에 소유권
<한국방송2>의 인기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올해 1월 중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생활대폭소>라는 제목으로 총 13회 전파를 탔다. 중국 위성채널인 <동방위성티브이>가 판권을 구매해 한국방송과 공동 제작했고, 시청률 수치에 연동해 수익도 배분했다. 한국방송 피디들이 중국에 건너가 노하우 등을 전수했고, ‘시청률의 제왕’, ‘생활의 발견’, ‘달인’ 등 인기 코너들이 중국 개그맨에 의해 그대로 재현됐다. 한국방송은 이번 ‘<개그콘서트> 수출’로 수억원가량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개그맨들한테는 얼마의 저작권료가 지급됐을까. 정답은 ‘한푼도 없다’이다. 개그맨들은 코너를 직접 만들지만, 작가나 작곡가 등과 달리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방송 쪽은 “코너가 방송을 타면 모든 권리가 방송사에 귀속된다”고 말했다. 중국판 ‘달인’에 직접 출연했던 김병만도 출연료만 받았을 뿐, 코너 아이디어료는 받지 못했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의 코너 5개가 2월 중국 <장쑤(강소)위성티브이>의 개그프로그램인 <다 같이 웃자>에서 리메이크됐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개그맨들은 “5분 내외 코너를 짜려고 1주일을 투자한다. 힘들게 만든 코너가 중국에서 리메이크됐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낸 개그맨들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개그도 포맷과 유행어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 5분 위해 1주일 올인…권리는 없다? 방송사마다 공채 시험에 붙으면 1~2년 정도 전속 기간은 있지만, 이들을 제외한 출연 개그맨들은 모두 프리랜서다. 개그맨들은 “방송사 소속도 아닌데 매일 출근해 1주일에 두번 코너 검사를 받고 하루는 녹화하는 등 모든 일상이 프로그램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개그맨들은 작가가 쓴 대본을 토대로 캐릭터 분석을 해 연기하는 배우와 달리 코너도 직접 짜고 유행어도 직접 만든다. 개그맨들끼리 만든 코너를 제작진한테 검사받는 과정에서 살이 붙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낳기도 하지만 제작진의 조언을 참고해 개그맨들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출연료는 이런 노력의 대가인데, 등급에 따라 회당 60만~200만원 정도다.

이런 노력으로 나온 아이디어가 광고나 드라마 등에 사용되더라도 개그맨들은 저작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특히 유행어는 저작권법에 의해 창작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답변에서 “보편적인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어구나 문장, 단어 등은 저작물로 보호되기 어려우며, 한 문장 정도의 문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아니한다는 판례들이 다수 있다”고 밝혔다. “그때그때 달라요”(컬투·<웃찾사>) 등 단어 몇개를 조합한 문장은 아무리 독창적일지라도 저작물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 무분별한 도용 속수무책 개그맨들의 아이디어가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활용되는 데는 이처럼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정 탓도 있다. 한 개그맨은 “코너가 인기를 끌면 포맷 패러디나 성우들이 유행어를 흉내 낸 라디오 광고가 쏟아지지만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2006년 <개그야>(문화방송)에 출연한 김미려의 소속사가 “김 기사. 운전해. 어서~”라는 유행어를 광고에 무단으로 사용한 업체에 항의해 광고를 중단시킨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 바라만 볼 뿐이다. 지난해는 한 기업체가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 포맷을 무단으로 광고에 활용하기도 했다. 코너에 출연했던 한 개그맨은 “구성은 우리가 만든 것인데, 포맷을 그대로 갖다 써버린 걸 보니 씁쓸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쪽은 “개그 포맷이나 유행어가 광고 등에 사용되더라도 해당 방송사도 저작권료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 코미디계의 사정은 우리와 다르다. 개그맨들이 직접 짠 개그를 갖고 여러 방송사에 출연하고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권리는 개그맨과 소속사에 있다. 김진중 요시모토흥업 한국사무소 실장은 “저작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 개그맨의 개그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합당한 아이디어값 주어져야” 개그맨들이 직접 나서 저작권을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2006년께 컬투가 ‘개그 저작권’에 대한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개그콘서트>라는 신개념의 코미디가 정착되면서 국내 코미디가 작가주의적 개그가 아닌 개그맨들의 100% 노력으로 창조되고 있다.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도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구라도 2010년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은 아무리 재미있고 유명한 유행어를 만들어도 저작권료가 없다”며, 개그맨 저작권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작권 보호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지상파 예능국 간부는 “코너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피디나 동료 개그맨 등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보태지기 때문에 누구 한명의 것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상파 예능 피디는 “개그는 많은 사람이 따라 해야 하는데, 저작권료를 물리면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누가 사용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참작하더라도, 개그맨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 행사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저작권 관련 업무 등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주원의 김민승 변호사는 “현 저작권법에 따르면 개그맨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면서도 “아이디어를 내어 고유의 창작물을 만든 당사자가 어떤 이득도 취할 수 없다는 건 불합리해 보인다”고 밝혔다. 최대웅 개그작가는 “개그도 창작의 산물이기에 저작권이 필요하다. 개그맨과 작가 등 코너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절한 비율로 권한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디어의 가치에 맞는 합당한 권리가 주어져야 개그맨의 위상도 높아지고, 이는 우리나라 코미디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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