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업계의 ‘최대 권력’으로 불리는 종합미디어기업 씨제이 이앤엠(CJ E&M)의 케이블방송 프로그램들이 여성 비하, 사교육 부채질, 일베, 성형만능주의 등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씨제이 이앤엠은 이미 지상파를 위협할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고, 공적 규제 장치도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급성장엔 자극적 소재·편집 한몫
욕설·막말에 일베 손동작까지
편집 안된 채로 그대로 내보내
시청률 상승 효과 ‘노이즈 마케팅’ 재허가·재승인 대상 채널 안 속해
방심위 중징계 받아도 되풀이
케이블 최대권력 영향력 크지만
사회적 책무·공적 규제 장치 미흡
CJ “동일문제 반복 않도록 주의”
■ 방송가 큰손으로 성장 1995년 케이블티브이가 개국한 이후 20년의 역사는 씨제이 이앤엠의 성장 역사다. 초창기에는 지상파 방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청률이 낮았지만, 최근에는 <티브이엔> <엠넷> <올리브> 등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채널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 수는 18개에 이른다.
2006년 개국한 <티브이엔>에서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제작 능력을 키웠고, 2009년 <엠넷>의 <슈퍼스타케이>의 성공 이후 본격적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금·토 주말드라마, ‘먹방’ 등 방송 유행을 선도했고, 1%만 넘어도 성공이라던 시청률도 지상파를 넘어섰다. 현재 방영중인 <삼시세끼>(티브이엔)의 최근 시청률은 12.1%였다.
그러나 이런 성장에는 자극적인 소재와 편집으로 논란을 일으켜 시청률을 높이는 ‘노이즈 마케팅’도 한몫했다. <슈퍼스타케이>는 출연자들의 행동을 과장해 편집하는 식의 일명 ‘악마의 편집’으로 논란이 됐지만, 시즌1이 최고 시청률 8%까지 찍으며 케이블 돌풍을 선도했다. ‘노이즈 마케팅’은 최근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 <쇼미더머니>(엠넷)와 <진짜 공부비법>(티브이엔), <렛미인>(스토리온) 등 다양한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여성 비하에 일베 논란 가장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은 힙합 가수들이 대결하는 <쇼미더머니>다. 2012년 시작해 시즌4가 방영중인데, 최근 ‘여성 비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에서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가 “미노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의 랩을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15일 “대한민국 여성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준 것은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래퍼 이현준은 같은 날 방송에서 “속사정 하지 마 콘돔 없이”라는 랩을 부르기도 했다. 비프음(삐 소리)으로 처리하기는 하지만 욕설도 자주 등장한다. 10일 방송에서는 한 참가자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일베를 의미하는 손 모양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제작진은 편집 과정에서 이런 장면들을 삭제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랩의 가사는 모두 자막처리를 했고, 일베 손가락 모양도 그대로 내보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힙합 가수들이 녹화 현장에서 돌발 행동을 하더라도, 제작진이 이를 편집에서 걸러냈어야 맞다”며 “제작진이 오히려 논란을 부추겨 시청률에 이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힙합문화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욕설이나 주류문화에 대한 비판은 용인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힙합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많다. 힙합 전문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트위터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비하 랩 가사들에 관해 힙합 팬이라고 다 인정하고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힙합이라고 여성 비하 표현을 쓰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남성훈 흑인음악 칼럼니스트도 트위터에 “스눕 독이나 에미넴 같은 미국 유명 힙합 가수들도 예전에 자신들이 썼던 여성 비하 표현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있다. 여성 비하 랩에 대해 ‘힙합이 원래 그렇다’거나 ‘센스 있다’고 말하는 것은 20년 전 미국 힙합에 머무르는 것이다. 더구나 전국에 나가는 방송에서는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 사교육 부채질·성형 조장 논란도 특정 사교육업체와 손잡고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듯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행태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9일 시작한 <진짜 공부비법>은 사교육업체인 에듀플렉스가 제작비의 일부를 댔다. 제작진은 “성적 판도를 뒤집는 학습코드의 비밀을 벗긴다”며 ‘지피지기 테스트’와 ‘펜타곤 학습법’ 두가지를 소개했다. 이 방법은 에듀플렉스에서 내세우는 학습법이다. 에듀플렉스는 이 프로그램을 홈페이지(누리집) 등을 통해 자사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티브이엔>은 지난해에도 이 업체와 손잡고 <이것이 진짜 공부다>를 방영했다. 지난 6월에는 스카이에듀라는 사교육업체의 과목별 대표 강사들이 고정출연하는 <성적욕망>을 내보내 논란이 됐다. 이 프로그램 역시 스카이에듀가 제작비의 일부를 댔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찍으면 수능에 백퍼센트 나온다” “2000만원짜리 과외 제안을 받아본 적이 있다” 같은 멘트를 내보내,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으로부터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사교육업자들의 영업을 이롭게 하는 홍보 도구로 방송이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외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대상으로 재건성형수술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취지를 내세운 <렛미인>은 성형 조장 논란에 휩싸여 있다. 재건성형수술이 필요한 부위뿐 아니라 아무런 문제가 없는 눈과 코는 물론 양악수술까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한성형외과의사회까지 16일 “<렛미인>은 의료행위를 상품화하여 성형수술을 맹신하게 만들어 무분별한 성형수술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 방심위 경고도 ‘안 무서워’…대안은? 이 프로그램들은 이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수차례 징계를 받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쇼미더머니 시즌3>은 1~4회가 욕설 등으로 방심위로부터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재방송·다시보기) 중지 및 관계자 징계’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쇼미더머니 시즌4> 역시 현재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에 심의 대상으로 올라가 있으며, 최고 수준 징계인 ‘과징금’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렛미인>도 지난해 시즌4가 “시청자가 출연 의사들의 시술 방법 및 효과 등을 과신하도록 하는 내용을 방송했다”며 ‘주의’ 처분을 받았다. 시민단체나 시청자들의 비판 목소리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씨제이 이앤엠 채널들이 지상파·종편과 달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재허가·재승인 대상 채널이 아니란 점에서 “방심위의 제재가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종편은 방통위부터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받을 때 징계가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기업 계열사인 씨제이 이앤엠의 지향점이 방송의 공공·공익성보다는 수익성에 치우쳐 있는 점이 이런 논란을 부풀리는 근본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청률을 의식한 ‘노이즈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지난달 26일 1.6%로 시작한 <쇼미더머니 시즌4>는 여성 비하 논란이 일었던 10일 방송에서 시청률이 3.5%까지 올라갔다. 씨제이 이앤엠의 한 관계자는 “워낙 많은 프로그램이 쏟아지기에 어떻게든 화제가 되는 게 중요한 건 맞다. <쇼미더머니>도 시청률을 올리려고 자극적으로 만든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이상윤 피디는 지난달 24일 제작발표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피디로서는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도 관심 둬주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면 시즌4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위의 한 관계자는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가 ‘과징금’ 조처인데, 씨제이처럼 자본력이 아주 큰 사업자에는 별다른 경고나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교수는 “유사한 내용을 재차 위반한 것을 보면, 심의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문제의 본질은 심각한 상업주의”라며 “채널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씨제이 내부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씨제이 이앤엠 쪽은 “시즌제 프로그램은 제작진에서 신규 시즌 시작 전에 기존에 문제가 됐던 사항을 리뷰하고 이를 해결·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러나 의도와 달리 일부 프로그램에 대해 논란이 발생되는 점에서는, 당사의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작에 좀 더 주의와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욕설·막말에 일베 손동작까지
편집 안된 채로 그대로 내보내
시청률 상승 효과 ‘노이즈 마케팅’ 재허가·재승인 대상 채널 안 속해
방심위 중징계 받아도 되풀이
케이블 최대권력 영향력 크지만
사회적 책무·공적 규제 장치 미흡
CJ “동일문제 반복 않도록 주의”
<쇼미더머니>의 한 장면.
<렛미인>의 한 장면
<진짜 공부비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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