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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리메이크, 그 손쉬움에 대하여…

등록 2015-07-12 19:05수정 2015-07-12 20:20

일본 드라마 (사진 위)을 리메이크한 한국 드라마 <심야식당>이 4일 방송을 시작했다.
일본 드라마 (사진 위)을 리메이크한 한국 드라마 <심야식당>이 4일 방송을 시작했다.
원조 못 따라가는 리메이크작
“마스터!”

<에스비에스>(SBS)가 지난 4일 첫 방송을 한 토요 드라마 <심야식당>(원작 일본 <심야식당>)을 보던 시청자들은 이 한마디에 눈이 동그래졌을지 모른다. 일본 원작처럼 극중 손님이 식당 주인한테 “마스터”라고 부른 것이다. 마스터는 일본의 바에서 경력이 오래된 바텐더를 부르는 호칭인데, 식당에서도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손님이 주인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식당이 있을까?

이 드라마의 제작사인 ‘바람이 분다’의 조선경 기획피디는 “호칭을 한국식으로 바꿀까 고민했는데, ‘마스터’라는 호칭이 <심야식당> 이후 더 대중적으로 불려지는 등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묘미를 살리느냐, 한국식으로 변형하느냐는 리메이크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의 공통된 고민이지만, 중요한 건 ‘공감’이다.

한국판 <심야식당>은 이밖에도 여러 측면에서 원작의 감성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심야식당>은 뒷골목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식당을 찾는 고독한 이들을 요리로 위로하는 내용이다. 좁고 낡았지만, 그래서 더 푸근한 원작의 식당과 달리, 한국 ‘심야식당’은 넓고 깔끔한 내부에 고급 스피커까지 놓여 있다. 원작 드라마는 공간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절반 이상 표현해주는데, 리메이크작은 세트가 그 느낌을 살리지 못해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이다.

<심야식당>은 2009년 일본 지상파 <티비에스>(TBS)에서 시작해 시즌3까지 이어졌고, 현재 한국에서 영화가 개봉해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심야식당> 한국판 개업을 계기로 최근 크게 늘고 있는 외국 드라마 리메이크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었다.

2002년 시작으로 2010년 이후만 24편
콘텐츠 부족에다 시청률 싸움 치열
검증된 외국드라마에 무작정 몰려
원작 못살리고 한국정서도 반영 못해

■ 대만, 이스라엘 이어 중국까지?

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시도는 꾸준히 늘었다. <한겨레>가 집계해 보니 2000년부터 2015년 7월까지 지상파 3사와 주요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은 34편 정도다. 방송가에서는 외국 드라마 리메이크의 시작을, 일본 문화가 개방된 1998년 이후로 본다. 2002년 <별을 쏘다>(일본 <롱베이케이션>)를 시작으로, 2003년 <요조숙녀>(일본 <야마토 나데시코>), 2005년 <봄날>(일본 <별의 금화>) 등 한두편씩 제작되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활발해졌다. 2009년까지 10편에 불과했는데, 2010년 이후 24편이 쏟아졌다. 올해는 3편이다.

34편 중 29편이 일본 드라마일 정도로 일본에 집중됐다. 2010년 이후 대만 원작이 리메이크되기 시작했고 중국 원작도 곧 만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장난스런 키스>(대만 <장난스런 키스>)가 방영된 이후 지난해 대만 드라마 2편이 리메이크됐다.(<운명처럼 널 사랑해> <마녀의 연애>) 방영되고 있는 <너를 사랑한 시간>도 원작이 대만이다. 3월 종영한 <스파이>는 이스라엘 드라마 <마이스>를 리메이크했고, 2011년 중국 <후난위성티브이>에서 방영한 <보보경심>도 한국판 드라마를 기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메이크가 늘어난 이유는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과 맞닿아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국방송> 드라마국의 한 간부급 피디는 “드라마 제작 편수는 늘었는데 콘텐츠는 부족하고, 시청률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안정성을 위해 검증된 외국 드라마를 찾는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현안인 비정규직, 왕따와 같은 문제들은 일본에서도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시청률과 완성도 측면에서 검증된, 이런 소재의 일본 드라마들이 많은 편이어서 손쉽게 빌려온다는 것이다. 그는 또 “두자릿수 시청률이 나오기 힘든 요즘에는 적은 제작비로 사랑받을 수 있는 대만 드라마가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대만 드라마는 가벼운 사랑이야기인 ‘우상극’(아이돌 스타가 등장하는 청춘물)이 많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한류열풍이 불면서 리메이크를 역수출에 활용하려는 전략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영한 <내일도 칸타빌레>는 한국에서 혹평받으며 시청률 4%(닐슨코리아)로 종영했지만 일본의 인기 드라마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방영 전에 이미 일본과 중국에 판매됐다.

대만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너를 사랑한 시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대만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너를 사랑한 시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리메이크=무조건 성공?

2010년 이전 리메이크 드라마는 대부분 성공했다. 10편 중 8편이 시청률이나 작품성에서 호평받았다. <꽃보다 남자>는 평균시청률이 28.5%였다. 권력을 향한 욕망(<하얀거탑>)이나 독신남과 독신녀의 사랑(<결혼 못하는 남자>) 등 매우 보편적인 소재에 이야기를 입혀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하얀거탑>은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감각적인 연출기법으로 시청률 20%를 기록했다.

그러나 리메이크 드라마가 범람하면서 ‘리메이크 드라마=성공’ 공식도 깨지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제작된 24편 중에서 성공한 작품은 6~7편에 불과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기가 검증된 드라마라도 신중하게 차용해 성공 확률이 높았지만, 요즘에는 인기가 있다면 무조건 판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리메이크를 하면서 ‘초등학생 왕따’ 등 한국 드라마 소재로는 다소 생경해 보이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여왕의 교실>은 초등학생들을 성적순서대로 앉히고 아이들끼리 왕따시키는 식의 이야기 전개가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주인공의 과장된 표정이 재미요소인 <내일도 칸타빌레>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강하게 드러난 일본식 대중문화 코드에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을 못한 탓이다.

■ 공감 넓힐 소재가 중요!

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는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 드라마 <마왕> <쩐의 전쟁> 등이 일본에서 리메이크됐고, <미남이시네요>는 대만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신의 선물-14일> <굿닥터> 같은 드라마는 미국에 판권이 팔렸다. 소재나 접근 방식의 다양성 측면에서 리메이크 드라마가 시청자들한테 더 많은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외국 원작의 무분별한 리메이크는 시청자들의 진한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고, 한국 드라마의 창의성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원작을 살리느냐, 한국식으로 바꾸느냐보다 당대 우리 사회의 분위기나 사회적 이슈를 녹인 시의적절한 내용과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3년 방송한 <직장의 신>(일본 <파견의 품격>)은 우리 사회의 절박한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나와 공감의 폭을 넓혔다. 비정규직을 택한 여자 주인공이 정규직보다 인정받는 모습으로 비슷한 처지의 비정규직 약자들을 위로했다. 한 드라마 작가는 “내 드라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각색에 참여해도 기분이 찜찜하다. 창작물을 쓸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무분별한 리메이크 시도를 줄여야 한국 드라마의 창의성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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