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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아나운서, 우리도 방송 좀 합시다

등록 2015-06-07 19:22수정 2015-06-08 10:38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아나운서들도 변신에 적극적이다. 홀로 연출까지 맡는 ‘1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이현경 <에스비에스> 아나운서(왼쪽 사진)와 드라마 <프로듀사>에 고정출연하는 서기철 <한국방송> 아나운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아나운서들도 변신에 적극적이다. 홀로 연출까지 맡는 ‘1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이현경 <에스비에스> 아나운서(왼쪽 사진)와 드라마 <프로듀사>에 고정출연하는 서기철 <한국방송> 아나운서.
끼 많은 아나운서 ‘마이크를 사수하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아나운서실에 들어서면 한자로 빼곡히 이름이 적힌 큰 족자가 걸려 있다. 1927년 국내 첫 방송이 시작된 이후 활동한 아나운서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방송의 역사는 아나운서와 함께 시작된다. 한국 아나운서 역사를 적은 책 <한국 아나운서 통사>에서도 “국내 방송사 초기 방송의 주역은 아나운서였다. 방송이 곧 아나운서였던 시대는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그랬던 지상파 아나운서들이 최근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 시대라 할 정도로 이들이 뉴스, 교양을 넘어 예능까지 섭렵했으나 이제는 주요 진행자의 자리를 연예인이나 전문 엠시에게 내주고 있다.

2007년 지상파 3사는 아나운서국이 생긴 이래 최대 인원을 예능에 투입했다. <문화방송>(MBC)은 오상진, 서현진, 문지애 등 6명을, 한국방송은 박지윤, 최송현 등 10명, <에스비에스>(SBS)는 김주희, 김일중 등 5명을 예능프로그램에 전진 배치했다. 당시 <지피지기>(문화방송)는 여자 아나운서 4명이, <유유자작>(한국방송1)은 아나운서 6명이 진행했다.

8년이 흐른 요즘, 진행은 더 이상 그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비아나운서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셰프도 진행을 하고, 운동선수도 진행을 한다. 프리를 선언하고 예능프로 전문 진행자의 길로 나선 아나운서도 늘었다. 유애리 한국방송 아나운서실장은 “아나운서와 전문 진행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요즘, 변신에 대한 아나운서들의 고민은 깊다”고 말했다.

뉴스·시사·교양에 예능까지 하던 황금기 언제던가
종편·케이블 시청률 경쟁 뛰어들면서
인기 시간대 전문 진행자 차지
새 활로 찾기 고심 중

■ 다매체, 프리선언…지상파 아나운서가 준다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방송을 누빈다. 다만,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36명이 속한 에스비에스 아나운서실 쪽은 “팀장급 이상을 제외하고 100% 방송에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실 인원은 102명인데, 이 방송사 프로그램의 85%에 아나운서들이 투입되고 있다. 아나운서가 약 40명 정도인 문화방송은, 진행자가 있는 프로그램 50여개 가운데 아나운서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30개 정도다. 그러나 각 프로그램에서 메인 진행자 구실을 하는 아나운서는 많지 않다.

아나운서 공채 인원도 약간씩 줄어드는 추세다. 지상파 3사의 서울 본사 선발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뽑은 아나운서는 70명 남짓이다. 한국방송은 2005년 6명을 선발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단 2명만 뽑았다. 1991년 개국 이후 한동안 4명을 뽑았던 에스비에스는 2005년부터는 2명 정도만 뽑고 있다. 문화방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공채 일정도 지금껏 잡지 않았다.

아나운서들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데는 지난 몇년 새 방송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큰 요인이다. 한 아나운서는 “케이블채널이 활성화되고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하는 등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지상파 아나운서의 시대도 저물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체가 크게 늘면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졌고, 능력있는 사내 아나운서를 키우기보다는 검증된 외부 인력을 데려오는 데 더 집중하게 됐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특히 지난해부터 지상파가 종편과 케이블에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예능에서 아나운서를 메인 진행자로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의 또 다른 예능 피디는 “괜찮은 아나운서를 키우고 싶어도 시청률이 떨어지면 바로 폐지되는 터라,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연예기획사의 자본력도 지상파 아나운서를 휘청이게 했다. 기획사 등에서 지상파가 키워놓은 끼 있는 아나운서들을 대거 영입했다. 유명해진 아나운서들이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은 욕구와 돈벌이 등의 이유로 2010년 이후 줄줄이 프리 선언을 했다. 한국방송에서 2006년 이후 프리 선언을 한 아나운서는 전현무, 이지애 등 15명이다. 2006년 이후 입사한 한국방송 아나운서는 33명 정도다. 문화방송은 2012년 장기 파업 이후 지금까지 문지애, 오상진 등 약 9명의 간판 아나운서들이 떠났다. 프리로 활동하는 한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할 일이 없어질 것이 두려웠고, 매체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니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고 했다. 또 다른 프리 선언 아나운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행사만 뛰어도 한달 월급 가까이 받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문화방송)와 전현무가 프리랜스 진행자로 변신한 뒤 성공을 거둔 게 지상파 아나운서실 동료들에게 자극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게 나간 아나운서를 다시 몇배의 몸값을 주고 방송사에서 기용하니, 기회가 있으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상파 3사 가운데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프리 선언을 한 아나운서는 2~3년 자사 방송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출연할 수 있는 방송사가 크게 늘어난 요즘 방어막이 되지 않는다.

■ 경쟁률은 여전히 수백 대 일…대안미디어 등 활로 모색

갈수록 지상파 아나운서가 되는 문은 좁아지지만, 아나운서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2013년 3명을 뽑은 문화방송 공채 지원자는 3500명으로 알려진다. 아나운서 양성 아카데미인 봄온 아카데미에 따르면 “지상파 공채가 갈수록 줄어 지망생들이 불안해하지만, 종편 등이 생기면서 일자리는 많아져 지망생은 10년 전보다 더 늘었다”고 말했다. 한 아나운서 지망생은 “지상파에 한번에 붙기는 힘드니, 케이블 등에서 먼저 일하면서 경험을 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나운서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안 찾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에스비에스 아나운서실 쪽은 “팟캐스트, 1인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 등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경과 유영미 아나운서는 스스로 피디 역할까지 겸하며 1인 라디오를 제작한다. <이현경의 뮤직 토피아>는 러브에프엠(103.5㎒)에서 매일 새벽 2시에 방송하고,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103.5㎒)은 매일 새벽 5시에 내보낸다. 뉴스를 오래 진행한 김소원 아나운서는 장기를 살려 보도국 기자들과 팟캐스트 <골라 듣는 뉴스룸>을 만든다. 박상도 아나운서는 1인 디엠비 라디오인 <박상도의 한밤의 디엠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한국방송도 최근 전 사원을 대상으로 1인 미디어 희망 모집 공고를 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실은 “라디오와 티브이가 혼합된 미디어가 더 늘어날 것을 고려해 다양한 관련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사 아나운서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목소리도 방송사 내부에서 나온다.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아나운서는 발성과 외모, 소통 능력 등 기본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준비된 재원이다. 경험만 쌓으면 뉴스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직종간 경계가 뚜렷했던 한국방송도 최근 벽을 허무는 모양새다. 서기철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드라마 <프로듀사>에 고정출연하며 연기 변신을 한 것을 두고 내부에선 상당한 변화라는 평이 나온다. 공채 선발 인원을 줄이지만 말고, 선발 기준의 변화를 통해 아나운서의 활용 폭을 넓히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아나운서를 뽑을 때 시사, 교양, 예능 등 각 분야 제작진의 대표가 함께 참여해 최종 합격자를 정하는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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