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미(디어) 수다
지난 13일 <삼시세끼 어촌편>(티브이엔) 마지막회 보셨나요? 전 모처럼 ‘본방사수’(재방송이나 브이오디가 아닌 본방송을 봄)를 했는데요. 많은 광고를 통과해 드디어 방송이 시작하려는 찰나, 시퍼런 바탕에 흰색 돋움체 자막이 눈 앞에 나타나더군요.
“티브이엔은 1월2일 등에 방송된 ‘미생물’ 프로에서, 간접광고주이자 협찬주의 제품을 시연하거나 제품의 특장점과 광고 문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장면 등을 방송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조치 결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조치를 받았습니다.”
지난 1월 방송된 드라마 <미생물>이 지나친 상업성으로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사과하는 내용이었죠.
위 자막에 나온 것처럼,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결정에 따라 조처를 한 겁니다. 방심위는 2008년에 기존에 방송 심의를 담당하던 방송위원회와 인터넷 등 통신 심의를 맡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합쳐진 ‘내용 심의’ 기구인데요. 직접 심의 규정을 만들어 제재 기준으로 씁니다. 심의위원은 청와대·여당·야당이 각각 3명을 추천해 9명이고요, 이들은 전체회의뿐 아니라 방송심의소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 등 분야별 심의에 참여합니다. 가벼운 제재는 소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사업자에게 벌점, 과태료 등 더 큰 불이익을 주는 중징계는 전체회의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기구를 만든 취지는 방송·통신 분야 사업자들이 공적 책무를 다하는지 감시해 우리사회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라는 데 있는데요. 방심위 자체도 저 같은 미디어 담당 기자들과 시민단체의 감시 대상이 됩니다. 방송·통신을 장악하고 싶은 권력자들이 이 기구를 이용하려 들 수 있고, 정파적 이해관계와 사리사욕을 우선하는 일부 위원들의 행동이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달 25일에도 저는 취재를 위해 직접 방송심의소위원회를 방청하러 갔습니다. 이날 인기 예능 프로 <무한도전>(문화방송) ‘나는 액션배우다’편의 ‘선정성’ 심의처럼 관심 있는 안건이 있기도 했지만,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했어요. 방심위 출범 7년여 만에 회의실 현장 방청이 가능해졌답니다.
이전에도 회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지만, 회의실 아래층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화상으로 봐야 했습니다. 화질이 떨어져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위원별 목소리를 익히기 전에는 구분이 어려운데다, 방송 장비에 문제라도 생기면 회의는 진행 중인데 아래에선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벌어졌죠. 이번에 회의장 안에서 직접 방청을 하니까 참여자들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이 잘 보이는 건 물론 중간에 끊길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좋더군요.
이는 단순히 ‘방청 편의가 좋아진 것’으로만 볼 순 없고요. 공적 기구의 투명성이 조금이라도 강화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방심위의 화상 회의 공개나 회의록 공개조차도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답니다. 방심위 출범 뒤 정보공개거부 처분취소 소송 등을 통해 끊임없이 투명성 강화를 요구해 온 언론·시민·정보인권단체들의 노력이 있었어요.
한층 생생한 회의 방청이 가능해진만큼, 방송·통신 분야에 관심 있는 시민들, 학생들에겐 직접 방청을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방송·통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고민해볼 수 있고, 간혹 <개그콘서트> 뺨치는 촌극을 목격할 수도 있답니다. 방심위 누리집(kocsc.or.kr)에 회의 일정·안건이 미리 공지되니, 참조하시면 됩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티브이엔이 지난 13일 <삼시세끼 어촌편> 8회 방송 직전에 내보낸 시청자 사과 화면.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해 9월4일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박효종 위원장이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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