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2,624,000,000원…방송사, ‘떼인 출연료’ 뒷짐 풀까

등록 2015-02-08 19:53수정 2015-02-09 19:51

법원 “방송사·연기자, 사용종속관계”
방송사 출연료 나몰라라 어려워져
외주제작사 재정상태 등 고려않고
톱배우·스타작가 우선편성 관행이
단역들 출연료 미지급 사태 한몫
KBS “출연료 책임 없어” 입장 고수
회당 수천만원씩 받는 주연급을 빼면, 우리나라 연기자의 대부분은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1991년 외주제작 정책이 도입된 이후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생존권까지 위협한다. 부실한 외주제작사들이 출연료를 주지 못하는 일이 잦은데, 방송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다. 방송가의 해묵은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 판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민중기 수석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방송연기자는 방송사의 지휘 감독을 받는 사용종속관계에 놓여 있다”고 판결했다. “연출감독이 대본 연습 때부터 연기에 관여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연기자들이 방송사 측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기자가 방송사의 근로자임을 인정한 이 판결 취지라면, 연기자 단체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 등과 관련해 방송사와 직접 협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소송은 <한국방송>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의 다툼에서 시작됐다. 1988년 설립된 한연노는 노사교섭 당사자로서 매년 방송사를 상대로 임금 등 단체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2012년 <한국방송>과 출연료 협상을 하던 중 중앙노동위원회가 한연노가 교섭 당사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결정하자, 이에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런데 이번에 법원이 한연노를 방송사의 협상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다. 외주제작사의 뒤편에 ‘숨어 있던’ 방송사가 전면에 등장한 셈인데,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드라마별 출연료 미지급 금액. 단, KBS <공주가 돌아왔다>와 KBS <국가가 부른다>의 출연료 2억 5천만원은 두 드라마의 출연료를 합친 액수다.
드라마별 출연료 미지급 금액. 단, KBS <공주가 돌아왔다>와 KBS <국가가 부른다>의 출연료 2억 5천만원은 두 드라마의 출연료를 합친 액수다.
발등의 불은 출연료 미지급 문제의 해결 여부다. 6일 현재, 출연료가 미지급된 드라마는 9편으로 총 26억2400만원에 이른다. <한국방송>이 14억1400만원(6편)으로 가장 많고, <에스비에스>가 9억2000만원(2편), <에스비에스 플러스>가 2억9000만원(1편)이다. ‘지연 지급’은 셀 수조차 없다. <아들 녀석들>(문화방송)은 2013년 3월 종영 뒤 출연료 지급이 미뤄지다 제작사 대표가 외국으로 잠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방송사가 출연료의 70% 남짓을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2012년 <대풍수>(에스비에스)는 지연 지급에 촬영 거부 사태까지 빚어졌다. 한연노는 “방영 중인 <달콤한 비밀>(한국방송2)의 제작사는 11월, 12월 방송분을 2월 초에 지급했다”고 했다. 방송출연계약서를 보면, 출연료는 방송 후 다음달 15일까지 지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제작비를 제작사에 모두 지급했고, 출연료는 제작사가 주는 것”이라며 책임을 피해왔다.

방송사의 책임성을 강조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외주제작사 선정 및 제작비 지급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송사들은 외주사를 선정하면서 재정 상태 등 제작 역량을 고려하기보다는 스타 작가나 톱 배우를 캐스팅한 쪽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또 지상파 4사의 외주제작비는 2008년부터 5년간 불과 9.9%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방송사는 보통 제작비의 50%를 제작사에 준다. 나머지는 제작사가 협찬 등으로 채우는데, 이쪽에 펑크가 나면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한연노는 “문제는 검증이 안 된 외주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다. 앞서 외주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제작을 진행하는 방송사 책임이 크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된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150여곳(2013년 기준)이고, 그중 내실있는 곳은 25곳 정도다. 문제가 된 제작사가 이름만 바꿔 다시 제작을 하는 경우도 많다. 방송사도 나름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제작사와 계약할 때 드라마마다 5억원의 지급보증금을 받는다. 제작비가 고갈되거나 출연료 미지급 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제작사가 출연료를 모두 지급했다는 확인증을 주면 5억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연노는 보증금 5억원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들 녀석들>도 보증금보다 미지급 출연료가 많아 문제가 됐다. 좀더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방송사가 제작사의 재무 상태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현재의 신고제를 등록제로 바꾸자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더 확실한 방법은 방송사가 외주작품 연기자에게 출연료를 직접 주는 것이다. 한연노 역시 2012년 <한국방송>에 이를 제안한 바 있다. 한국방송 쪽은 그때나 지금이나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방송은 이번 고법 판결에 대해 대법원 상고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연기자들의 노동조건 자체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연노 소속 탤런트·성우·코미디언·무술연기자 등 약 4500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봉 1000만원 미만이다. 성인 최저인 6등급 배우의 경우 70분물 기준으로 야외 수당 등을 뺀 순수 출연료는 40여만원이다. 한 배우는 “교통비와 밥값, 체류비 등을 자비로 먼저 계산하는데, 출연료를 못 받으면 돈을 내고 출연하는 셈”이라고 했다. 한연노는 “이번 판결을 근거로 질 높은 방송 제작 환경을 위해 당사자들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