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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TV 켜면 드라마…드라마…또 드라마

등록 2014-12-14 21:10

드라마 <조선총잡이>.
드라마 <조선총잡이>.
방송 8개사 올해만 102편 만들어
종편·tvN 가세 영향 제작편수 늘어
비슷한 설정·안전한 리메이크 위주

교양 등 다른 장르보다 시청률 높아
경영진, 적자내도 드라마 제작 압박
“드라마 너무 많아…이러다 자멸”
대한민국은 현재 ‘드라마 홍수’다. 마음만 먹으면 토요일 오후 내내 엉덩이 한번 안 들썩이고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드라마 재방송 전문 채널이나 아이피티브이(IPTV)로 다시보기를 하지 않아도, 10시간 연속 드라마 시청이 가능하다. 실제 지난 6일 토요일엔 오후 1시30분 <문화방송>(MBC)을 시작으로, 밤 11시 <티브이조선>까지 드라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쉼없이 이어졌다.

14일 <한겨레>가 직접 세어보니, 2014년 한 해 동안 제작된 드라마는 102편이나 됐다. <한국방송1>을 뺀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종편) 4사, 그리고 케이블에서 드라마를 많이 만드는 <티브이엔>(tvN)까지만 집계한 결과이다. 문화방송 25편, <에스비에스>(SBS) 24편, <한국방송2> 23편으로, 지상파만 해도 모두 72편에 이른다. 여기에 티브이엔이 20편을 만들었고, 종편 4사도 11편을 제작했다. 2010년 대략 73편이었는데, 해마다 늘었다. 드라마 피디들조차 “한국처럼 이렇게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드라마 <전설의 마녀>.
드라마 <전설의 마녀>.
드라마 <연애의 발견>.
드라마 <연애의 발견>.
드라마 편수가 늘어난 것은 종편과 티브이엔이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 말 개국한 종편 4사 가운데, <제이티비시>(JTBC)는 올해 7편을 선보였고, 지난해 드라마를 한 편도 안 만들었던 티브이조선도 3편을 내보냈다. <엠비엔>(MBN)도 올해 드라마 편성에 시동을 걸었다. <채널에이(A)>는 올해 한 편도 만들지 않았다. 2006년 개국 당시 한 편만 제작한 티브이엔은 지금껏 총 75편을 만들었다.

드라마가 늘면서 주말드라마나 평일 미니시리즈만 얘기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게 됐다. 티브이엔에서 ‘금토드라마’가 나왔고, 토요·일요·금요드라마까지 등장했다. 제이티비시는 화요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도 선보인다. 한국방송2도 내년부터 금요드라마를 두 편 연속 내보낼 예정이다. 한국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지상파도 종편과 케이블을 상대해야 하니 드라마 편성 요일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양적 증가가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지상파 드라마 72편 가운데 평균시청률 20%를 넘긴 건 5편 남짓에 불과하다. 내용도 비슷비슷하다. 102편 중에서 멜로드라마나 로맨틱코미디만 40편 남짓이다. <내 생애 봄날>,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아이언맨>처럼 같은 시간대 지상파 수목드라마가 비슷한 설정으로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다. 소재가 고갈되다 보니 외국 드라마를 넘어 웹툰, 웹소설 등의 리메이크작도 이어졌다. 한국방송의 또다른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 경쟁이 심화되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내놓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 <왔다! 장보리>.
드라마 <왔다! 장보리>.
드라마 <정도전>.
드라마 <정도전>.
드라마 제작이 방송사 수익 개선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광고시장이 죽어,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드라마는 만들수록 손해”라고 했다. 실제 시청률 1위라고 뽐내는 드라마들도 대부분 광고 수익이 제작비에 미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문화방송 주말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은 시청률은 20%에 육박하지만 광고는 절반도 안 팔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6월 내놓은 ‘2013년도 방송사업자재산상황 공표집’을 보면 지난해 지상파 3사의 광고매출은 1조5321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감소했다.

드라마 제작 경쟁이 격화되면서 배우와 작가의 몸값이 뛰는 것도 한몫을 한다. 이름 좀 알려진 작가들은 회당 작가료가 3000만~4000만원 수준이다. 배우들은 1억원도 받는다. 문화방송 피디는 “미니시리즈 제작비가 보통 3억원 정도면 작가와 배우가 합해서 1억5000만원 정도를 가져간다. 드라마가 늘어나면 이들의 몸값은 더 뛸 것”이라고 했다. 이에 최근 지상파 3사 드라마국 피디들 사이에선 “드라마가 너무 많다. 이러다 자멸한다”는 얘기까지 오간다. 한 지상파 피디는 “경영진에 주말 오후에 연속으로 두 편 나가는 드라마를 한 편으로 줄이고, 평일 저녁 두 편으로 편성된 일일드라마를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상파 피디들은 먼저 70여분 하는 시간이라도 줄이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이런 상황에도, 방송사들이 드라마에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지상파 피디들은 시청률에 연연하는 경영 시스템을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보통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경영진으로선,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시청률이라는 당장의 경영실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익 측면에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는 다른 장르보다 시청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종편과 케이블은 다른 이유로 드라마에 공을 들인다. 한 종편 관계자는 “에스비에스가 개국 당시 <모래시계>로 화제를 끈 것처럼, ‘드라마 대박’이 채널 이미지를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올해 <삼총사> <감자별> 등 기대했던 드라마들이 화제몰이에 실패했던 티브이엔이 <미생>의 성공으로 단숨에 재평가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가 많아지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넓어져서 좋지만, 특정한 흥행 공식을 반복하거나 비슷한 장르의 드라마가 쏟아지면 많은 편수 자체가 공해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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