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의 TV와 연애하기
연예계에는 고질병이 있다. 좀 떴다 싶으면 어김없이 걸린다. ‘연예인병’과 ‘주인공병’ 그리고 ‘톱스타병’이다. 셋 다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은 같지만, 뜯어보면 조금씩 다르다.
‘주인공병’은 조연이나 무명의 연예인이 드라마 주연을 맡고 나면 발병한다. 처음부터 주연이었던 양 힘든 과거를 부정하는 증상이다. 그 연예인의 매니저도 함께 걸린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친 드라마 작가들도 가끔 앓는다. ‘톱스타병’은 그러던 주연들이 인기가 폭발하면 나타난다. 한 톱스타는 오랜만에 만난,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 피디가 “조카가 좋아한다”며 사인을 요청하자 이렇게 거절했다고 한다. “제 사인을 인터넷에 올려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아무한테나 안 해줍니다.”
가장 증상이 심한 건 ‘연예인병’이다. 주로 티브이에 나와 유명세를 탄 일반인들한테 나타난다. 사람들이 알아본다며 갑자기 택시만 타고, 친구를 매니저로 삼아 데리고 다닌다.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해진 아무개씨는 관심이 부담된다며 출연 방송사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기자들한테 알려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단다.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인기 예능만 골라 나가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병으로는 개그맨들만 걸리는 ‘탤런트병’이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나면 개그프로그램에 나가 웃기는 걸 거부하는 증상이다. 예쁘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 탤런트들과 어울려 다니며 때론 성형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병도 낫는다. 치료 과정도 비슷하다. 잘난 척하다가 인기가 떨어지면, 주변사람들의 대우가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당분간은 그런 현실을 부정한다. ‘내가 누군데. 얼마나 잘나갔는데’ 자아분열을 겪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초심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떠나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한 개그프로그램 관계자는 “드라마에 출연한 개그맨들이 개그 무대를 떠났다가, 드라마에서 더는 안 불러주면 열심히 하겠다며 다시 돌아오는 게 공식”이라고 했다.
이런 ‘병자’들과 마주하는 기자들도 병이 난다. ‘화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때는 톱스타병을 만나면 ‘이 바닥은 원래 이런가’ 어안이 벙벙하다. 조금 지나면 티는 낸다. “신문에 어느 정도 크기로 들어가느냐”부터 따지는 주인공병을 앓는 이를 만나면 ‘욱’하지만, 설득하고 이해시켜 합의를 본다. 경력이 더 쌓이면 증세가 폭발한다. 기사를 내기 전 ‘검열’하겠다는 연예인을 만나면, “인터뷰하지 말죠”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노하우가 쌓이면 액션드라마에 출연해놓고, “왜 힘들게 액션장면을 자꾸 넣느냐”면서 작가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병세가 심각한 연예인’ 정도는 미리 파악이 된다. 안하무인 연예인들은 띄워주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이 생긴다.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 산다. 그 인기가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기란 게 물거품 같아서 한순간이다. 정점을 찍으면, 또 내려오는 게 이 바닥 이치다. 한순간의 들뜸에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뒷감당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한 개그맨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훈련을 했더니 떨어지고 나서도 잘 견디게 되더라”고 했다. 그러니, 연예인들이여, 병을 조심하시길. 그래야 내 화병도 낫는다고!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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