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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한달에 기름값만 600만원”…촬영 장소 찾아 삼만리

등록 2014-12-07 17:53수정 2014-12-07 20:40

드라마 장소 섭외 담당자 ‘애환의 세계’
단순히 멋진 곳 찾는 게 아니라
내용·구성과 맞고 거리도 따져
어렵게 찾았는데 건물 사라지고
공사 소음에 촬영 못할 땐 ‘허탈’

카페 빌리는 데 30만~100만원
부유층들 사는 곳 섭외 힘들어
전철 후진 찍으려 ‘막걸리 뇌물’도
“돌아다녀 좋겠다는 말은 마세요”
<미녀의 탄생>의 주요 장소인 사라(한예슬)의 집은 부암동에 있다. 이 집의 실제 주인은 한 대학교 교수다. 민광진 장소 섭외 담당자는 부암동 골목을 며칠 뒤진 끝에 이 집을 찾았다. 주인을 설득하려고 집을 리모델링한 건축가까지 동원했단다. 민씨가 6일 부암동 집을 찾아 상태를 살피고 있다.이정용 기자 <A href="mailto:lee312@hani.co.kr">lee312@hani.co.kr</A>
<미녀의 탄생>의 주요 장소인 사라(한예슬)의 집은 부암동에 있다. 이 집의 실제 주인은 한 대학교 교수다. 민광진 장소 섭외 담당자는 부암동 골목을 며칠 뒤진 끝에 이 집을 찾았다. 주인을 설득하려고 집을 리모델링한 건축가까지 동원했단다. 민씨가 6일 부암동 집을 찾아 상태를 살피고 있다.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미녀의 탄생>의 주요 장소인 사라(한예슬)의 집. 이정용 기자 <A href="mailto:lee312@hani.co.kr">lee312@hani.co.kr</A>
<미녀의 탄생>의 주요 장소인 사라(한예슬)의 집.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자, 첫번째 메리크리스마스.” 오상식 차장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장그래가 가슴이 벅차 찾은 곳은 회사 옥상이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카드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극중 원인터내셔널 옥상은 드라마 <미생>(티브이엔)의 주요 공간이다. 아이디어가 샘솟고, 숨겨뒀던 진심을 드러내고, 때론 주먹다짐도 한다. <미생>의 옥상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옥상의 실제 장소는 서울역 맞은편의 서울스퀘어이다. 이 장소를 선택한 <미생>의 이재문 기획피디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스퀘어의 옥상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직장인의 애환이 서린 공간으로 표현하기에 적격이었다”고 했다.

좋은 장소는 드라마의 밀도를 높인다. <미생>의 옥상은 이재문 피디가 찾았지만, 드라마마다 장소를 섭외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영화에서는 로케이션 매니저라고 불리는 섭외 담당들이다. 대본이 나오면 적절한 장소를 찾아 전국 팔도를 누빈다. 예전엔 혼자서 했으나 지금은 2~3명의 팀 단위로 움직이기도 한다. 제작사 혹은 방송사와 작품당 많게는 1000여 만원을 받고 장소 섭외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드라마를 짓는 ‘건축가’! 장소 섭외는 보통 드라마 촬영 두달 전부터 준비한다. <미녀의 탄생>(에스비에스)을 맡고 있는 경력 20년의 민광진 섭외 담당자는 “시놉시스를 받고 연출과 미술팀과 함께 전체 분위기를 정한다”고 했다. 세부 신의 장소도 이 콘셉트에 따라 정해진다. <미생>을 8회까지 맡았던 경력 10년의 이재우 섭외 담당자는 “<미생>은 소박하고 서민적 분위기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했다.

장소 섭외 비용은 드라마 한편당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수억원에 이른다. 드라마마다 장소 섭외 담당자들이 공 들이는 핵심 장소가 하나씩은 있다. <미녀의 탄생>은 극중 한예슬과 주상욱의 부암동 집에 공을 들였다. <미생>에선 특히 회사 로비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원인터내셔널 전경과 옥상은 서울스퀘어인데, 로비는 삼성역의 코스모타워다. “엘리베이터가 6개 있어야 하고, 로비의 규모도 커야 해 강남, 송도 등을 몇주간 살폈다”고 한다. 이씨는 <타짜> 첫회의 시장을 찾으려고 두달 가까이 전국을 누볐단다.

장소를 섭외했다고 끝이 아니다. 신마다 촬영팀보다 현장에 먼저 가서 장소가 잘 세팅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촬영에 필요한 소품 등의 구입처도 파악해야 한다.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모래네 시장에서 만난 민씨는 <미녀의 탄생> 촬영팀보다 1시간 앞서 도착해, 현장을 살피고 섭외 장소인 가게에 없는 개불을 사다 놓았다. <별에서 온 그대>를 했던 경력 25년의 조남철 섭외 담당자는 “장소 섭외는 만능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달 기름값만 600만원? 민씨는 “단순히 멋있는 장소가 아니라 내용과 구성에 맞는 장소와 촬영의 용이함, 교통편 등도 다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옥탑방이라면 계단이 보여야 하는 등 장소마다 필요한 기준이 있다. ‘장소 찾아 삼만리’를 하는 이유다. 민씨는 “한달에 기름값이 600만원이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달간 3만㎞를 달리기도 했다. 섭외 장소도 헌팅, 사전답사, 촬영 등으로 기본 세번 이상은 찾는다. 조씨는 “지금은 내비라도 있지, 예전에는 지도를 보며 돌아다녔다. 좋은 길은 다시 돌아가 손으로 약도를 그려 제작진과 출연자들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운전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직업병’은 기본이고, 운전을 많이 해 오른쪽 어깨와 허리 통증은 달고 산다. 민씨는 그렇게 모은 데이터만 “다이어리로 12권이 넘는다”고 했다.

어렵게 찾아도 장애물은 많다. 민씨는 “헌팅해놓고 한달 뒤 가면 옆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 시끄러워 못찍거나, 건물주인이 바뀌어 부숴지고 없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가장 난감할 때는 피디가 막연한 장면을 요구할 때다. 무작정 종이에 풍경을 그려 똑같은 곳을 찾아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단다. 북한, 저승길 등 접해보지 않은 장소를 찾아야 할 때도 어렵다. 이씨는 “초짜 때는 쪽대본이 나오면 멘붕이었다”고 했다. 다음날 촬영 대본이 새벽에 나오면 3~4시간 안에 촬영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순발력과 빠른 판단력이 요구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담당자가 섭외를 진행 중인 곳은 피한다. 이 세계의 상도다.

청담동은 연예인도 안먹힌다? 요즘 장소 섭외의 기준은 ‘돈’이다. 카페나 레스토랑 등은 시간당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받는다. 요즘은 카드도 된다. 병원, 학교, 호텔은 여전히 까다롭다. 특히 평창동 등 고급주택이 많은 지역이 힘들다. 조씨는 “<별그대> 때 주인공의 집을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촬영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고 했다. 톱스타의 이름도 소용없다.

이럴 땐 설득의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는 꾸준히 찾는 것이다. 민씨는 “<그린로즈> 때는 지하철을 후진시키려고 담당자를 찾아가 1주일 내내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도 안되면 ‘무대포’ 정신도 필요하다. 조씨는 “<별그대>에서 김수현이 꽉 막힌 도로에서 뛰쳐나오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송도의 어느 도로를 막고 찍었다가 경찰에 불려갔다”고 한다.

1인에서 팀으로 전문화 그들이 선택한 장소가 방송에 나가면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나비 부인>에서 염정아의 시댁이었던 한 음식점은 대박이 났다. 민씨는 “<검사 프린세스>에서 한남빌리지 대안으로 촬영했던 죽전 테라스하우스는 방송 이후 분양이 완료됐다”고 했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이 강의한 송도 인천대는 해외 관광객들의 관람코스가 됐다. 그래서 유혹도 있다. 민씨는 “한번 와서 먹고만 가면 300만원을 주겠다는 데도 있고, 승용차도 한대 주고, 평생 골프치게 해줄테니 우리 골프장에서 촬영해달라는 유혹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런 곳일수록 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보조를 포함해, 30여명이 드라마 장소 섭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팀 단위로 일을 하는 등 전문화 추세다. 하지만 드라마가 늘어나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뛰어들어 물을 흐리기도 한다. 저가로 계약한 뒤 대충 아는 곳을 들이미는 것이다. 제작현장에선 지금도 아무나 다 하는 일인데, 라는 인식도 남아 있다. 노동의 댓가도 넉넉하지 않다. 15년 전엔 작품에 투입되는 기간 동안 월 1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편당 1000만원 남짓인데, 팀으로 움직이면 몇 명이 나눠 갖는다. 그래서 대부분 두세 편을 한꺼번에 한다. 조씨는 “미국은 작은 장면이라도 경찰 등의 허가를 받은 뒤 통제 협조를 받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주먹구구식인데, 미국처럼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돌아다녀서 좋겠다”는 얘기란다. 전국을 돌지만, 외로운 직업이다. 조씨는 지난해부터 딱 하루 쉬었다고 한다. 민씨는 결혼 10년 동안 가족여행 한번 못갔다. “돌아다니면서 ‘가족들과 와야지’ 적어놓는데 바빠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어렵게 딱 맞는 장소를 찾았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하죠!” 드라마가 중반에 접어들면 그때부턴 전쟁이라는 이들은, 다음 장소에 가야 한다며 또다시 달린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미생’ 오상식 차장이 킨텍스로 입국했다고?

감쪽같은 ‘대안 장소’는 여기

인천공항? 킨텍스!

인천공항은 토·일은 촬영이 안되고 평일에도 촬영이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배우나 촬영 일정 등 여건상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대안이 필요하다. 그럴 때 공통적으로 찾는 곳이 일산 킨텍스다. 킨텍스 남문쪽에서 들어가는 입구의 문 등이 공항과 비슷하단다. <미생>에서 오상식 차장이 외국에서 돌아오던 곳도 인천공항이 아닌 킨텍스다.

■ 청와대? 국사편찬위원회!

청와대 외경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로 찍고 분당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건물도 애용한다. <제5공화국> <시티헌터> 등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찍었다. <야왕> 등 내부는 경주의 라궁호텔을 많이 찾는다. 청와대 들어가는 입구는 상암동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진입도로 부근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찍으면 감쪽같단다.

북한? 충북 중원대!

검찰청도 현관까지는 촬영이 가능하지만 로비는 못 찍는다. 그래서 수원시청 로비를 많이 활용한다. <강력반>에서도 검찰 로비는 수원시청이었다. <닥터 이방인>에 나와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라게 했다는 북한의 만수무강연구소는 충북 괴산 중원대이다. 장소 섭외에 북한 고위 간부를 지낸 탈북자의 조언이 있었다고 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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