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의 승부의 한 장면
남지은의 TV와 연애하기
“○○○ 진짜 예뻐?” 방송연예 담당 기자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듣는 질문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요즘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넌 언제 티브이에 나오냐?” 중학생 조카마저 묻는다. “이모는 언제 나올 수 있어?”
이게 다 케이블방송의 <용감한 기자들>(E채널) 때문이다. 기자들이 출연해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뒷이야기’를 풀어내며 화제를 모았다. 요즘은 지상파의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도 연예 기자들이 고정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시시콜콜 토해낸다. 간혹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대체로 방송연예 ‘전문가’들이 털어놓는 정보에 신뢰를 보낸다.
‘약간’ 과장을 했다 한들 대세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들의 가십성 수다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직업군으로 넘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요즘 텔레비전에는 의사나 변호사 등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늘었다. <닥터 지바고>(채널A) <닥터의 승부>(JTBC)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문직 종사자로서 관련 정보를 시청자들한테 전달하겠다는 건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출연자 섭외 과정의 실상부터 봐야 한다. 한 지상파 피디는 “개인병원은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라 종합병원 의사들 위주로 섭외한다”며 나름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실력을 따지지 않는다. ‘방송’에 적합한 외모와 말재주가 우선이다. 유머감각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종편까지 생긴 뒤 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늘면서 이제는 ‘원칙’을 찾기도 힘들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설마 방송사가 검증도 안 된 의사를 데려왔겠냐’는 생각에 일단 신뢰한다. 방송에 자주 노출되는 동안 그들의 ‘실력’마저 믿게 된다.
실제로 방송에 나와 유명세를 타면 환자나 의뢰인이 몰린다. 한 피부과 원장은 케이블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얼굴 시술을 ‘협찬’한 뒤로, 유명세를 타 병원을 확장이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의사나 변호사는 ‘홍보’를 위해 방송 출연을 열망한다. 암암리에 출연을 요청해오는 이도 있단다. 의료법상 방송에서 병원광고가 금지된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홍보 수단은 없다.
무분별한 섭외에 따른 피해는 시청자가 떠안는다. 최근 고 신해철씨를 수술한 의사도 <닥터의 승부>에 나와 인지도를 쌓았다. 오래전 방송에 출연해 유명해진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해준다며 돈을 받아 잠적한 적도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도 최근 “의료 프로그램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의사들을 출연시키고 있다. 신해철씨 사건 이면에는 의료 간접광고의 부작용이 크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진짜 ‘고수’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방송에 나가 시시콜콜 자신을 홍보할 시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선 기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물론 개인의 선택권이 뒷받침된 방송 출연을 무조건 힐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취재원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공공연히 밝히는 건 ‘언론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기자도 많다. 조카야 알겠니. 그래서 이모는 출연하지 않는 거란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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