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드라마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워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별관에서 만난 <드라마스페셜> ‘간서치 열전’의 박진석 피디와 문준하 피디는 뜨거운 반응에 놀란 표정이다. “잘 될 거라고 믿었다”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간서치 열전’은 지상파 콘텐츠로는 최초로 웹드라마와 티브이 방송분을 동시에 제작했다. 13일부터 18일까지 매일 10분씩 7부작 중 6부를 네이버 캐스트로 먼저 내보냈다. 오늘(19일) 밤 12시 결말을 포함한 전편을 티브이에서 방영한다.
플랫폼의 융합이라는 지상파 콘텐츠 최초의 시도라는 기대와 함께 부담감도 컸다. 반응이 미지근할 경우 다음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뜨겁다. 19일 오전 현재 누적 조회수만 60만 건을 돌파했다. 성공한 웹드라마의 누적 조회수는 보통 180만 정도라고 한다. ‘간서치 열전’의 노출 날짜가 채 1주일도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반응이다. 다양한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청자의 기호를 능동적으로 잡아낸 두 남자의 모험이 티브이 드라마에 새 길을 열고 있다.
‘간서치 열전’의 성공은 기획부터 철저히 웹드라마의 특성을 연구한 준비에 있다. 단순히 티브이 방영분을 10분씩 잘라 내보내지 않고, 웹드라마의 특성에 맞게 편집을 달리하는 등 신경을 썼다. 박진석 피디는 “음악도 다르게 삽입하는 등 편집에 차이를 뒀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해야 해 매회 기승전결을 갖추고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전개되도록 했다. 본방송보다 웹드라마의 방송 시간이 길다”고 했다. 문준하 피디가 웹과 방송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박진석 피디가 연출했다.
미스터리 추적극이라는 ‘간서치 열전’의 소재 자체도 웹드라마로 안성맞춤이다. 허균이 썼다고만 전해지는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탄생 비화를 찾아 나서는 액션 추적극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세상에 단 한 권뿐이라는 홍길동전이 사라지자 책에만 빠져사는 장수한이 용의자가 된다. 장수한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이 책을 한 번이라도 읽고 싶어 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음모를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긴박하게 그려진다. 박진석 피디는 “작가가 2년 전 쓴 대본을 ‘장수한이 홍길동전을 찾아 나선다’는 설정만 빼고 새롭게 다시 썼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연구해왔다는 문준하 피디는 “간서치 열전은 주인공이 다양한 국면을 맞는다. 70분이라는 시간 안에 이야기를 풀어야 해 템포도 빠르다. 그래서 호흡이 빠른 웹드라마와 잘 맞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기본적으로 ‘범인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보기 때문에 어느새 장수한의 추적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다음회를 기다리게 하는 쫄깃함을 준다. 문준하 피디는 “어렸을 때 연재만화를 기다리던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드라마를 기다리면서 ‘12시 신데렐라가 됐다’는 덧글이 감동적이었다”고도 했다.
탄탄한 대본을 맛깔나게 담아낸 연출도 좋다. 박진석 피디는 5월 방영한 <드라마스페셜> ‘부정주차’에서도 장르의 영역을 넓혔다고 호평받았다. 이번 드라마에선 그의 감각이 돋보이는 세련된 장면이 특히 많다. 살인 누명을 쓰고 잡혀간 장수한이 주검의 몸에 난 칼자국을 보고 지금껏 읽은 책을 머릿속으로 들춰보며 살해 도구를 떠올리는 순간에서 미국 드라마
를 연상케하는 인서트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장수한과 무관 이도사가 미행당하는 뻔한 장면을 스태디캠을 활용해 역동적이면서 코믹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장수한의 어머니가 책을 마당에 버리는 간단한 장면조차 카메라 각도를 아래에서 위로 잡는 등 그의 장점이 발휘됐다.
KBS 2TV의 ‘드라마스페셜’이 19일 밤 방영하는 ‘간서치 열전’
‘간서치 열전’은 시즌제로 제작해도 손색없어 보인다. 진부할 정도로 많이 나온 게 수사물이지만, 간서치가 살인 사건의 열쇠를 풀어가며 잃어버린 홍길동전을 찾아나선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새로움을 입혔다. 책의 내용만 달리하면 나올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서출이라는 신분상 한계로 책을 보며 시름을 잊는 주인공 장수한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아픔과 천재성,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며 ‘책바보’라 불리지만 뭔가 있을 것같은 반전의 기대를 준다. 박진석 피디는 “책바보인 장수환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바보’가 어떤 의미의 ‘바보’인가는 마지막회를 보면 알게될 것”이라고 했다.
지상파 콘텐츠 최초의 플랫폼 융합의 시작은 단막극의 깊은 고민에서 나왔다. 박진석 피디는 “<드라마 스페셜>이 일요일 늦은 밤 방송이 한 번 나가고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존재감 있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드라마 플랫폼이 웹과 스마트폰 등으로 다양화할 경우, 단막극이 더 많은 시청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문준하 피디는 “두번째 ‘웹드라마’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간서치 열전’은 오늘 밤 12시 <한국방송2>에서 방영한다. 끝나면 네이버 캐스트에서 웹드라마의 마지막 7부가 나간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