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말 즐겨 쓰는 세태 반영해
제작·홍보 과정에서부터 고민
짝수보단 홀수…뜻·발음 쉽게
뜻 모를 조합 ‘언어 희롱’ 비판도
제작·홍보 과정에서부터 고민
짝수보단 홀수…뜻·발음 쉽게
뜻 모를 조합 ‘언어 희롱’ 비판도
“어제 <운널사> 봤어?”라는 질문이 바로 이해가 된다면 당신은 드라마 마니아다. <운널사>는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줄임 제목이다. 모르는 이들은 “절 이름이냐”고도 되묻는다.
드라마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게 요즘 유행 중 하나다. <에스비에스>의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너포위>이고, <끝없는 사랑>은 <끝사>, <막돼먹은 영애씨>(티브이엔)는 <막영애>이다. 곧 방영하는 <괜찮아 사랑이야>는 <괜사랑>이고,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는 <별그대>로 더 많이 불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미사>라고 하는 등 오래 전부터 제목을 줄여부르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시작 전부터 제작사 등에서 줄임 제목을 고심하는 등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드라마 홍보대행사 블리스미디어의 김호은 대표는 “누리꾼들이 먼저 댓글 같은 데서 줄임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홍보사에서 미리 드라마 줄임 제목을 고민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냥 앞글자를 따서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에 따라서는 줄임 제목을 위해 몇일을 고민한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운명사’, ‘운명’ 등 다양한 조합 가운데 고심 끝에 ‘운널사’를 택했다. 드라마 방영 전 ‘운널사’라는 단어가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줄임 제목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드라마 홍보대행사 와이트리 미디어의 노윤애 대표는 “드라마는 입에서 입으로 화제가 돼야 하는데 줄임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고 했다.
드라마 제목을 줄여 부르는 데도 ‘법칙’이 있다. <끝없는 사랑>을 <끝사>라고 줄여 불렀지만, 보통 세 마디 이상 되는 것들을 줄인다. 짝수 보단 홀수를 선호한다. 김호은 대표는 “업계에서는 세자, 다섯자 등 홀수 제목이 잘된다는 불문률이 있어, 줄임 제목도 이왕이면 홀수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리듬감도 중요하다. 노윤애 대표는 “단어를 읊었을 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방송>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과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는 어떤 조합을 내놓아도 어감이 이상해 줄임 제목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부 팬들은 <조선총잡이>을 ‘조총’으로 부르기도 한다.
줄임 제목은 인터넷 등에서 말을 줄여쓰는 유행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버스 카드 충전’을 ‘버카충’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매체가 많아지고 온라인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도 영향을 줬다. 인터넷 공간의 언어습관에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줄임말은 ‘언어 희롱’이라는 비판도 있다. ‘언어 유희’는 순발력과 창의력을 키우지만, 지나칠 경우 소통에도 장애가 된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피디는 “트렌드를 반영한 걸 백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언론에서 나오는 기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원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말을 줄이더라도 원래 제목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강’이라는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지금과 같은 줄임말은 전혀 뜻을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터 줄임말 표현이 보편화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애나’는 “‘따말’이 뭐야 했더니 알고보니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7글자를 말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굳이 줄여야 하나 싶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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