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홍렬
20년 만에 코미디프로 복귀 ‘이홍렬’
귀곡산장·한다면 한다·이홍렬쇼 등
90년대 방송 휘어잡았던 개그맨
2000년 중반부터 서서히 밀려나
“내리막길 인정하고 상황 즐겼죠”
‘코미디의 길’서 28년 후배와 호흡
“철저한 준비 뒤에 애드리브 해야
원로 코미디언 활동 늘었으면…”
귀곡산장·한다면 한다·이홍렬쇼 등
90년대 방송 휘어잡았던 개그맨
2000년 중반부터 서서히 밀려나
“내리막길 인정하고 상황 즐겼죠”
‘코미디의 길’서 28년 후배와 호흡
“철저한 준비 뒤에 애드리브 해야
원로 코미디언 활동 늘었으면…”
“내 입을 틀어막고 싶죠?”
개그맨 이홍렬은 중간중간 이렇게 툭툭 던졌다. 그런데 왜 묻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가는데. “하하. 내가 원래 말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면 희열이 느껴져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웃겨주고 싶어. 어디, 오늘 작정하고 웃어볼테야?” 빈말이 아니었다. 인터뷰 2시간 동안 그의 입은 정말 잠시도 쉬지 않았다. 약력을 찾아보니, 1954년생이다. 올해가 환갑! 20일 서울 남산의 한 커피숍에서 이홍렬을 만났다.
이홍렬을 36년 동안 개그맨으로 살게 한 힘은 뭘까. 1979년 <동양방송>(TBC)의 <청춘대합창>으로 텔레비전에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시대를 풍미한 다른 개그맨들이 전성기가 지나면 모습을 감추는 것과 다르다. 최근엔 <코미디의 길>(문화방송 일 밤 12시10분)에서 20년 만에 다시 개그프로그램 무대에 섰다. 28년 후배 개그맨 김용재와 짝이 되어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페이크(가짜) 다큐’로 담았는데, ‘셀프 디스’도 주저하지 않는다. “‘감’ 떨어졌다고 아무도 나와 짝을 하지 않으려는 등 실제 상황 같은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보여지잖아. 얼마나 재미있어요. 홍성진 작가와 최원석 피디가 정말 머리가 비상해.” 현실이 서글플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실인데, 뭐. 이 나이에 개그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받았지”라며 즐거워했다.
낙천적인 성격에 현실을 인정하면서 즐기려는 태도가 아니었다면, 이홍렬도 다른 이들처럼 모습을 감췄을지 모른다. 그는 1993년 <오늘은 좋은날> ‘귀곡산장’, 1994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다면 한다’, 1995년 <이홍렬쇼> 등 1990년대 방송계를 휘어잡았다. 특히 ‘귀곡산장’에선 “뭐 필요한 거 없수” 등의 유행어를 낳으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가 최고의 전성기였죠. 6개월치 출연료는 기본으로 미리 받았고, 방송국에 내 전용 주차공간도 따로 있었어요.”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탔다. 한때는 프로그램이 없어 몇 년간 쉬기도 했단다. “내 인생의 찬란한 시절이 지나갔구나 싶어 착잡하기도 했어요. 연예인은 관심에서 멀어지면 우울해지니까. 그래서 ‘일반인’으로 돌아가려 무지 노력했어요. 주어진 상황 자체를 즐기려 했죠.” 주요 프로그램에서 밀려나도 “이걸 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쁘냐”고 생각했단다. 토크쇼를 하고 싶은 마음을 요즘은 <이홍렬의 라디오쇼>(TBS FM 월~금 밤 10시5분)로 해소하고 있다. “두시간 동안 마음껏 떠드니 이보다 더 좋은 토크쇼가 어딨어요.”
<코미디의 길> 출연도 옛 명성을 되찾으려 나선 건 아니다. “후배들이 자리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출연했어요.” 후배들이 하고 싶은 말도 대신하는 듯 했다. “개그가 잘 되려면 신인 중에 스타가 나와줘야 하는데, <코미디의 길> 방송 시간대는 스타가 탄생하기 힘들어요. 아무리 재미있어도 늦은 시간에 하면 보지 않으니까. 엠비시가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좋은 시간대로 밀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뼈있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개그맨의 첫번째 조건은 순발력이지만, 준비없이 애드리브에만 의존하면 안 돼. 치밀하게 대본을 짜고 철저히 준비한 뒤에 무대에 올라야 해요.”
최원석 피디는 “이홍렬이 지금도 대본 분석 등 철저히 준비해 온다. 후배들과의 아이디어 회의도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홍렬은 “예전에도 매일 그날 방송한 모든 예능프로그램을 다 모니터하고 잤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늘 남다른 시도를 해왔다. 요즘 유행하는 꼭지들도 사실 예전에 그는 해봤던 것들이다. ‘먹방 토크’도 <이홍렬쇼> ‘참참참’에서 했고, 요즘 화제가 되는 ‘19금 토크’는 <이홍렬쇼> ‘유부클럽’에서 선보였다. “내가 반듯한 이미지가 있는지, 야한 얘기를 하면 반응이 안 좋았어요. 그렇지만 실패하더라도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고 싶었어. 인기에 안주하지 말고 도전하며 살아야 발전을 하죠.”
늘 최선을 다해왔기에 그는 36년간 ‘코미디의 길’을 걸으면서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배들이 없는 건 아쉽다. “외국처럼 원로 코미디언들이 나오면 안 되나. 구봉서 선생님은 지금 만나도 개그감이 대단하세요. 개그맨들은 죽기 전까지 감이 사라지지 않아. 그게 우리의 본능이거든.” 예전 가수들이 다시 활동하는 최근의 ‘추억 열풍’에 동참해 7080 개그맨들도 다시 뭉치면 어떨까? “후배들보다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낼 자신있죠. 그러나 고정 코너는 안 돼. 개그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회의를 하는 게 기본인데, 다들 부업에, 가정에, 어휴~ 잡무가 많아서 회의 자체가 안 될 걸요. 하하.”
중학생 때 개그맨의 꿈을 꿨다. 그때부터 매일 일기장에 “나는 반드시 코미디언이 될 것이다”고 적었단다. 지금은 “잘 늙어야 한다. 이제부터다”가 그의 주문이다. 59살에 남수단 아이들을 도우려고 국토종단을 하고, 28년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나눔에 앞장선 이유도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 (만나이로도) 꽉찬 60살이 되는 다음달 19일에는 “지나온 날을 반성하고 앞으로 더 웃으며 살자는 의미로” 자서전도 출간한다. “그날 저녁에 북콘서트도 해요. 전영록 등 친구들을 불러 노래도 하고 낭독도 하고. 영록이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에요. 아니 왜요? 영록이랑 친구라니까 웃겨요? 그래요, 다들 웃더라구. 마음껏 웃으세요. 웃으니까 또 즐겁네. 푸하하하하.”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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