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천상여자>, <제왕의 딸, 수백향>
지상파 3사 일일극 자기복제하듯
여주인공 앞세운 복수극 빼닮아
여성 시청자들 공분이 곧 시청률
익숙한 제작에 새 형식 고민없어
여주인공 앞세운 복수극 빼닮아
여성 시청자들 공분이 곧 시청률
익숙한 제작에 새 형식 고민없어
평일 오전 7시50분. 일일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출발은 <내 손을 잡아>가 하고 마지막은 사극 <제왕의 딸, 수백향>(왼쪽 사진·이상 문화방송)이 맡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정된 시간에 찾아가는 지상파 3사 일일극은 현재 모두 8개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6일부터 방송된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티브이(TV) 소설 <순금의 땅>의 주인공은 정순금(강예솔)이고, <에스비에스>(SBS) 새 일일극 <나만의 당신>(20일 첫방송)에서도 7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이민영이 주연을 맡았다. 우연일까?
■ 주시청층을 고려한 선택 일일극 주 시청층은 여성이다. 평론가들은 “여성 시청자 입장에서는 남자보다 여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기 때문에 일일극 주인공으로 여자가 선택된다. 매일 보는 드라마의 특성상 감정이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침극에서는 남자 주인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못난이 주의보>, <오자룡이 간다>, <힘내요 미스터 김> 등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저녁 일일극도 더러 있었지만, 보통 가족 이야기 안에서의 남자 캐릭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힘내요 미스터 김>은 특이하게 ‘남자 가사도우미’ 캐릭터를 내세우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 흥행 기폭제는 ‘여자의 복수’ 아침극 단골 메뉴인 한 서린 여자의 복수극은 저녁 일일극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침극=복수극’, ‘저녁극=가족극’이라는 일일극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엄마를 버린 친아버지에 대한 복수극을 그린 <인어아가씨>(2003년)의 대성공(평균 시청률 32.0%) 이후 팜 파탈 여주인공 캐릭터는 종종 저녁극에서도 나타난다. <오로라공주>와 함께 막장 논란을 빚은 <루비반지>(한국방송2)는 잘나가는 언니를 시샘해 사고 뒤 얼굴을 바꾸고 언니처럼 살아가다가 파멸을 맞는 동생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후속 <천상여자>(오른쪽 사진) 또한 언니의 복수를 위해 견습 수녀에서 야누스적인 악녀로 변신하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6일 시작된 <천상여자>는 첫 주 시청률에서 전체 공동 9위(14.4%)에 오르기도 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 대신 시청률이 올라가는 셈이다.
■ 끊임없는 자기 복제는 문제 집안 배경과 학벌은 부족하지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여주인공과 돈, 능력, 외모 다 갖춘 이상형의 남주인공. 둘은 온갖 음모를 꾸며대는 연적과 가족의 반대를 함께 헤쳐나가며 결혼에 성공한다. 아침·저녁 일일극 가릴 것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불치병 등이 추가되기도 하며, 지켜야 될 비밀은 항상 문틈 사이로 엿듣는 자에 의해 우연찮게 까발려진다. <제왕의 딸, 수백향>은 출생의 비밀을 두번 비틀기까지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일극은 자기 복제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고정 시청층을 위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재생산하고 있을 뿐 작품으로서의 의미는 찾기가 어렵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한 방송사 피디는 “상처 받은 여자들의 성공기는 연민을 넘어 시청자로 하여금 응원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익숙한 패턴이기 때문에 만들기 편한 점이 있다. 1주일에 다섯번, 30~40분 방송되는 특성상 제작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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