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남자 서울말 쓰느라 몸 뒤틀
20살에 짝사랑해봐 감정은 공감돼
악역 이미지 강했는데 선하게 변해
광고 줄잇고 출연료도 10배나 껑충
20살에 짝사랑해봐 감정은 공감돼
악역 이미지 강했는데 선하게 변해
광고 줄잇고 출연료도 10배나 껑충
“연기 점수요? 77점이요. 칠봉이 등번호가 77번이거든요.”
‘칠봉이’란 이름이 처음부터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별명(‘일곱 번 완봉승’의 의미)이어도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정감 있고, 나정이(고아라)가 ‘봉아, 봉아’ 하고 부를 때는 귀엽기까지 하더라고요.” <응답하라 1994>(<응사>·티브이엔)에서 칠봉이는 신촌하숙 유일의 ‘서울 남자’였다. 첫사랑에 실패한 캐릭터이기도 해서 여운이 짙다. 칠봉이 역의 유연석(30)을 최근 서울 압구정동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울 토박이를 연기했지만, 실상 그는 경남 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산·여수·삼천포(사천)·순천 등 여러 지역 사투리가 섞여 나오는 가운데 혼자 서울말을 썼으니 “몸이 뒤틀리고 어색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는 이우정 작가가 나정의 사투리를 흉내 내는 장면을 넣어줘서 그나마 사투리 한(?)을 풀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사회인 야구를 하는 터라 야구 선수 역은 어색하지 않았다. 칠봉이처럼 투수는 아니고 “달려가서 뜬공 잡는 것을 잘해서” 외야수로 뛴다. 방망이도 제법 휘두르지만 아직 홈런 맛은 못 봤다. 촬영 때는 현역 야구 선수가 자세를 봐주기도 했다. 어릴 적 태권도 유단자로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고 복싱도 했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 운동은 꾸준히 한다.
칠봉이는 스무살의 첫사랑을 간직하면서 7년 동안 짝사랑을 이어가는 순애보를 보여줬다. ‘쓰레기’(정우)에게 일편단심인 나정에게 가끔씩 사랑의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칠봉이의 감정이 낯설지 않았기에 표현에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힘들까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나본 적도 있고 사랑 때문에 많이 아파본 적도 있어요. 스무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짝사랑을 했는데, 짝사랑이 그 사람에게는 짐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칠봉이의 감정과 사랑에 공감할 수 있던 이유였죠.”
<응사> 시청자들은 나정의 남편 찾기 퍼즐을 맞춰가면서 ‘쓰레기파’와 ‘칠봉이파’로 나뉘었다. 쓰레기는 속정은 있지만 센스가 없는 지방 출신 남자였고, 칠봉이는 다정하고 매너가 있는 서울 출신이었다. 유연석은 어떤 부류의 ‘남자’일까. “전 칠봉이와 쓰레기 두 캐릭터가 혼재돼 있는 것 같아요. 다정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이 있거든요.” 그가 만약 나정의 입장이었다면 누구를 선택했을지도 궁금했다. “당연히 칠봉이죠. 남자가 봐도 질투가 날 정도로 멋있잖아요. 너무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에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용기도 있고. 게다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도 했잖아요. 그리고 저라도 칠봉이를 선택해줘야죠. 하하하.”
유연석은 함께 출연한 고아라·바로(B1A4)·도희(타이니지)와는 달리 10대 때 <응사>의 시대 배경이 된 1990년대 문화를 경험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고, <마지막 승부>와 <엠> 등 드라마도 즐겨 봤다. “저도 삐삐 세대예요. 삐삐 받고 전화로 목소리를 확인할 때까지의 기다림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약속 장소에서도 ‘언제 올까’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이 좋았고요. 요즘에는 조금만 늦어도 계속 휴대폰으로 전화 걸고 그래서 기다림이 없잖아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로, <응사>는 제게도 90년대 향수에 젖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올드 보이>(2003년)에서 유지태의 아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학교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졌고, 스무편가량 학생 단편영화에도 출연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영화 <건축학개론>·<늑대소년>·<화이>와 드라마 <구가의 서> 등에 출연했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살인마 연기를 했다. 이 때문에 악역 이미지가 강했지만 서른살에 만난 <응사>를 통해 선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선한 역과 악한 역을 두루두루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 왔는데 다행히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요. 한때는 심심한 외모가 콤플렉스였는데, 다양한 작품을 하고 나니까 악한 역 선한 역 다 소화할 수 있는 외모라는 생각도 들어요. 콤플렉스가 장점이 된 거죠.”
드라마의 인기와 칠봉이의 선하고 건강한 이미지 덕에 광고 출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1월1일에도 광고 촬영을 하는 등 이미 7개의 광고를 찍었고 진행 중인 계약 건도 여럿이다. 영화 출연료도 <응사> 전보다 10배 가까이 올랐다. 유연석은 “한결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배우이자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새해 포부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글·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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