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이수근·탁재훈·김용만·강병규·신정환 등등…
‘웃음 유발’ 스트레스 큰데, 풀 방법은 제한적
스마트 기기로 ‘온라인 불법도박’에 쉽게 빠져
‘웃음 유발’ 스트레스 큰데, 풀 방법은 제한적
스마트 기기로 ‘온라인 불법도박’에 쉽게 빠져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애니팡으로 카카오톡(카톡) 게임에 입문한 지 어언 1년. 그동안 나의 엄지와 검지는 애니팡과 안녕을 고한 뒤 부지런히 윈드러너를 했더랬다. 그러다가 두 달여 전부터 캔디크러시 사가에 빠졌다. 역시나 지인들과 경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즐겨 하는 카톡 게임은 달라지고 있지만, 늘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언제나 상위 그룹에 프로야구 선수들이 있다. ‘넘사벽’의 단계까지 가 있는 그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만날 사탕만 깨고 있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긴 이해는 간다. 프로야구가 끝나고 늦은 식사를 하면 자정을 넘어선다. 이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잠 시간을 놓쳐서 수면 유도제에 의지해 잠을 자는 선수도 꽤 있다. 프로야구 인기 상승과 더불어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지면서 밖으로 잘 나갈 수 없으니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꽤 제한적이다. 자연스레 피시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게임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삶의 구조다. 더러는 온라인 도박을 불법행위가 아닌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스포츠 선수들과 생활 리듬이 비슷한 연예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이수근·탁재훈·붐·토니안·앤디·양세형 등이 온라인 불법도박 혐의로 조사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들은 한 번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판돈을 걸고 스포츠 경기에 베팅했다고 한다. 스마트 기기만 있다면 장소가 어디든 자유롭게 브로커에게 문자를 보내는 방법으로 베팅할 수 있으니 도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곰곰이 짚어보면, 가수나 개그맨 출신인 이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약하는 방송인이다. 앞서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김용만·강병규·신정환·이성진을 봐도 그렇다. 이들은 예능의 특성상 말이나 몸짓으로 웃음을 유발해야만 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남을 웃기는 것(배우들도 코믹 연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이라는데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웃기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에 압박감 또한 심했을 터.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장소 불문하고 스마트 기기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온라인 도박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선택은 그들의 엄지와 검지가 했다.
‘띵동~’ 하고 스마트폰 명세서가 날아들었다. 허거걱. 구글 플레이 콘텐츠 요금이 무려 6만2000원이 청구됐다. 캔디크러시를 하면서 밤마다 1200원, 2500원 결제하던 것이 쌓이고 쌓여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만큼의 액수로 커졌다. 불법도박 연루 연예인들도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들었을 것이고,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잃은 것도 그들의 돈이고, 실추된 것도 그들의 명예다. 빠르면 1년여 뒤 그들은 다시 텔레비전 안에서 웃고 있겠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도박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띵동~.’ 새로운 문자가 왔다. 한 단체를 통해 후원하는 아이가 다음달 생일이란다. 이번엔 온라인 쇼핑몰에서 6만2000원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선물을 골라서 보내줘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나의 엄지와 검지에게 그렇게 속죄의 기회를 줘야지 싶다. (마침표를 찍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 연예인들은 도박과 관련되면 자진 하차를 하는데, 정치 도박꾼, 경제 도박꾼들은 왜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일까.)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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