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수년간 우리 가족에게 10월은 없는 달이었다. 남편이 몸담은 프로야구단이 계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나 또한 가을야구 취재에 바빴다. 10월이면 늘 야구장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이 간다’고만 되뇌다, 올해 처음으로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갔더랬다. 그 낯섦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흔히 프로야구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하긴 야구에 각본이 있다면 승부 조작이 될 터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도 딱히 완전한 대본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16부작일 경우 10부가 넘어가면 쪽대본이 난무하고 당일 촬영, 당일 방송이 보편화됐다. 바쁜 일정 탓에 배우의 연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센 이야기로 승부를 거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오죽하면 ‘더 세게, 더 독하게’가 요즘 드라마 트렌드라고 할까. 시청률 욕심 탓에 원래 기획했던 시놉시스에 상관없이 중반에 캐릭터나 이야기 전개를 확 바꾸는 드라마가 한두 개가 아니다.
출연료도 그렇다. 피디들은 “자고 나면 출연료가 10만원씩 오른다. 다른 연기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한다”며 푸념한다. 어랏?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프로야구 선수 연봉 계약 때마다 야구단 운영부장이나 단장이 늘상 하는 말이다. “다른 구단 ○○○보다 100만원이라도 더 달라고 하네요. 자존심은 세워달라고….”
수입과 지출을 거의 비슷하게 맞추는 프로야구(아직까지 적자 구조여서 모기업 광고비로 적자를 때운다)에서 선수단 운영비(연봉·장비값 등등) 비중은 40~50%에 이른다. 프로야구 흥행으로 관중 수입이 증가하면서 비중을 꽤 줄였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드라마 제작비에서 출연료 비중 또한 50~60%에 이른다. 미국·일본(20~30%)에 비하면 꽤나 높다.
방송 관계자들은 1990년대 말 일부 연기자에 대한 섭외 경쟁이 불붙으며 출연료가 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후 한류 열풍과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몸값이 더욱 뛰었다. 프로야구 또한 1990년대 말 외국인 선수 제도와 자유계약(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연봉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선수 한 명 연봉이 한 해 관중 수입보다 많은 구단도 있었다. 70분 단막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가 1억~1억5천만원인데, 톱스타의 한 회 출연료는 1억원 안팎이다. 몸값 거품은 방송사(혹은 제작사)나 구단이 부추긴 면이 없지 않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사람이 챙기는 것도 엇비슷하다. 방송사는 보통 외주제작사에 빠듯한 제작비를 주고 드라마를 맡기는데, 티브이 광고료는 모두 방송사 몫이다. 광고가 ‘완판’돼도 제작사 몫은 없다. 프로야구단도 지자체에서 야구장을 빌려 쓰는데, 서울 연고의 두산 베어스와 엘지 트윈스가 올해 서울시에 낸 임대료는 25억5800만원에 이르렀다. 야구장 내·외야 광고 수입도 서울시가 전부 가져간다.
2013년 10월의 모습도 일견 닮았다. 프로야구에서는 다소 밀릴듯 보였던 정규리그 4위 두산이 넥센 히어로즈(3위)와 엘지 트윈스(2위)를 차례로 제압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꼬리칸의 반란’이란다. 수목극도 비슷한 양상이다. 작가 인지도나 캐스팅 면에서 꼴찌를 할 것 같던 <비밀>이, ‘로맨틱코미디의 여왕’ 김은숙 작가(<상속자들>)와 일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의학 드라마(<메디컬 탑팀>)를 누르는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프로야구, ‘섣부른 예측은 절대 금물’이라는 게 어쩌면 가장 닮은 점 아닐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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