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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막장은 어떻게 착한 드라마가 됐을까

등록 2013-09-05 19:32수정 2013-09-05 20:25

드라마 <못난이주의보>
드라마 <못난이주의보>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막장. 사전적 의미는 ‘갱도의 막다른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 데까지 갔다’는 뜻으로 많이 통용된다. ‘막장 드라마’는 독하디 독한 코드로 갈 데까지 간 드라마라고 하겠다.

일부 대중문화평론가들은 2008년 엠비(MB) 정부의 출범 시기와 맞물려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막장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겹사돈,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경제 불황과 맞물려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면서 ‘막장’과 ‘드라마’에 접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조강지처클럽>, <아내의 유혹>, <너는 내 운명> 등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한 평론가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도덕이나 법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막장 드라마가 뜬다”고 했다.

<에스비에스>(SBS) 일일드라마 <못난이주의보>가 있다.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오로라공주>(문화방송)의 임성한 작가가 드라마 속 인물의 입을 통해 묘사한 <못난이주의보>는 이렇다. “여주인공 아빠가 재혼했는데 친구 딸과 했다. 남자 주인공은 산전수전 다 겪었고, 그 아빠는 교도소 드나드는 잡범이다. 그런데 첫사랑 신데렐라가 (남자 주인공 아빠한테) 찾아왔다. 남편이 의사였는데 죽으니까 첫사랑 남자를 찾아와서 재혼했다.” 임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후에 나온다. 극중 인물은 “울면서 보면 영혼이 저절로 힐링된다. 기자들도 착한 드라마라고 난리다. 그런 명품 드라마를 봐야 돼, 막장 보지 말고”라고 한다. 아마도 임 작가는 “막장 줄거리인데 이게 무슨 착한 드라마냐”고 반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못난이주의보>의 인물 관계만 보면 뻔한 막장 드라마 같다. 남자 주인공 공준수(임주환)의 첫사랑인 유정연(윤손하)은 아빠 친구(천호진)와 결혼했고, 아빠 친구의 딸 나도희(강소라)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공준수는 첫사랑의 의붓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뿐이랴. 공준수는 의붓동생과 한때 나도희를 놓고 삼각관계에 빠졌다. 여동생 공진주(강별)는 하룻밤 실수로 미혼모가 될 뻔했다. 막장이 맞지 않냐고?

하지만 <못난이주의보>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인물 관계 설정은 막장일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서술법은 착하고 참 따뜻하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다른 이들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밑도 끝도 없이 악한 사람도 없고, 악다구니 장면도 없다. 남녀 주인공 반대쪽 사람들일지라도 합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 우연의 연발과 도 넘은 질투로 인한 모략도 없다. 꼬인 관계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

면면을 보면, 공준수는 “이 세상에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무지무지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는 무한 긍정의 ‘아신또’(아무 것에나 신이 나는 ‘또라이’)이며, 나도희는 재벌 딸이지만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번 자립형 인물이다. 재벌 회장(이순재)은 특정 인물 조사를 해온 비서가 그 집안까지 얘기하려 하자 “왜 집안까지 들추냐”며 화를 내고, 30대 천재 디자이너는 스스럼없이 다소 모자란 빈털터리 60대 아저씨와 친구가 된다. <못난이주의보>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크건 작건 결핍을 안고 있는 ‘못난이들’이지만, 사람 관계와 소통 속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간다. 시청률은 10% 안팎에 머무는데도 팬클럽까지 생겨난 이유다.

욕망이 거침없이 배설되고 막장 같은 현실이 되풀이되는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못난이주의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 해답을 이야기하기에 착한 드라마다.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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