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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해나, 김종학 그리고 ‘진격의 거인’

등록 2013-07-25 19:44수정 2013-07-25 20:21

<해나의 기적>
<해나의 기적>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 18일 오후 서울 공덕동 사무실 안 고개를 드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한 달여 전 사무실로 배달된 <해나의 기적>이다. 해나(사진)는 요조숙녀처럼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해맑게 웃고 있다. 가슴에 쿵 돌덩이가 얹어진다. 해나 삶의 ‘모래시계’는 지난 7일 멈췄다. 선천적으로 기도가 없이 태어나 스스로 숨을 쉬기 위해 조그만 몸집으로 사투를 벌이다 35개월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문득 7개월 전, 맹장 수술을 위해 웃으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가 마취 사고로 깨어나지 못한 숙모가 생각난다. 숙모는 싸울 시간도 없이 영원한 잠에 빠졌다.

■ 19일 밤 홍대앞 술집 닭다리를 뜯으면서 한참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내년이면 쉰살이 되는 남자 선배가 대뜸 물었다. “그런데 김해숙(극중 이보영의 엄마)은 어떻게 됐어?” “민준국(정웅인)에게 살해됐다”고 하니 “결국 죽었어?”라며 헛헛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 누가 죽거나 죽는다고 하면 더 못 보겠더라.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이제 그만 봐야겠다.” 멈추지 않는 시간은, 죽음을 한층 더 가깝게 하는 것일까.

■ 21일 새벽 경기도 부천 집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때문에 밤을 새운 것은 순전히 지난주 토요판 기사 때문이었다. 진짜 몹쓸 호기심이다.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인간들을 우걱우걱 먹어댄다. 거인이 벌거벗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 그 잔인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또한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린 인간의 무력함은 사실감을 더한다. 식량난 때문에 살아남은 인류의 20%를 식인 거인이 있는 성 바깥으로 내모는 것은 일견 영화 <설국열차>와 닮았다. 죽음은 가끔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하다.

■ 23일 낮 사무실 안 본능이 ‘점심 뭐 먹지’라며 아침부터 굶주린 배를 깨울 찰나, 김종학 피디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순간 <모래시계>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언니의 서울 자취집에서 다음 날의 대입 논술 시험을 준비중일 때, 언니는 자취생 언니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모래시계>를 봤더랬다. 그날 밤 역시나 몹쓸 호기심 때문에, 방문 틈에 귀를 대고 제주도에서는 볼 수 없던 드라마의 대사를 엿들었다. ‘저 목소리가 최민수?’ <에스비에스>는 <모래시계>의 대성공으로, 뒤늦은 출발에도 지금은 <한국방송>·<문화방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의 이름을 딴 김종학프로덕션은 대형 제작사로 성장해 드라마 트렌드를 주도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죽음’과 함께한 1주일이었다. 현실이건 가상의 현실(드라마든 영화든 다큐든 만화든)이건, 혹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죽음이, 죽음이라는 단어가 늘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해나의 기적> 책 표지가 안 보이게 엎어버린 것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해나의 ‘부재’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마 책을 눈앞에서 치우지는 못하겠다.

<진격의 거인>에서 자기 삶의 전부였던 에렌 예거를 잃고 삶을 포기한 채 거인에게 잡아먹히려 했던 미카사 아커만의 몸과 마음을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은 과거 에렌의 피 끓는 절규였다. “싸워! 싸워야 해! 싸우지 않으면 절대 이기지 못해!” 잔혹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말 아닐까. ‘지금’은 누군가가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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