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귀를 닫고 살아야 하나

등록 2013-07-04 19:28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하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너의 목소리가 들려.

처음 드라마 제목을 접했을 때,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챠우챠우’가 생각났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무한 반복 도돌이표 노랫말은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놀다가 사라졌다. 하긴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면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박수하)가 등장하니 딱 어울리는 드라마 제목이다.

<드림하이>(2011년)를 썼던 박혜련 작가는 아마도 노랫말과 그 안에 담긴 의미에 심취해 있는 듯하다. 1부 ‘너의 목소리가 들려’, 2부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 4부 ‘흐린 기억 속에 그대’, 9부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처럼 노래 제목이나 노랫말을 차용해서 드라마 부제목을 짓는다. 부제목만으로 극 내용이 예상되니 참 재기 발랄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너목들>)는 수하(사진)의 초능력, 즉 판타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너목들>은 장르상 ‘법정 로맨스 판타지 성장드라마’다. 그리고 스릴러까지 섞여 있다. 판타지는 극 전개를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얘기다.

장혜성(이보영)은 국선 전담 변호사지만 속물 근성이 다분하다. 로펌에 들어가거나 스스로 개업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해 선택한 것이 고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철밥통’ 국선변호사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무료로 변론을 해주지만 재판에 이기고 지는 것은 굳이 신경쓰지 않는다. 의뢰인의 호소는 일단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검사가 된 어릴 적 앙숙과 수하를 만나면서 서서히 달라진다.

수하의 초능력은 ‘짱변’ 혜성에게 참 유용하다. 피의자의 진짜 속마음을 읽음으로써 진실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혜성이 수하에게 “넌 괴물 같기는 한데 꽤 쓸 만한 괴물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참과 거짓의 여부를 100% 알고 난 다음에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수하 친구인 성빈의 무죄도, 편의점 주인을 살해한 쌍둥이 형제의 유죄도 이런 방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초능력 소년과 억울한 이(때로는 억울하지 않은 이도 있겠으나)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속물 변호사. 그럴싸한 조합이다.

박혜련 작가는 계속 시청자와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끔 허를 찌른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막장 코드 없이도 <너목들>은 수목극 시청률 가뭄을 해소하며 20%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창의력 빈곤의 드라마 전성시대에 <너목들>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게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로 맛있는 비빔밥 하나가 완성되고 있다고나 할까.

혜성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을 감추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것이 앙숙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라도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을 줄 아는 용기가 혜성에게는 있다. 그런데 요즘 현실은 어떤가. 마음이 아닌 귀로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존재하는데도 온갖 핑계로 가리기 급급하거나 혹은 제 입맛대로 끼워맞추며, 의도치 않게 듣게 된 ‘검은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어야만 했다며 법의 채찍질을 휘두른다. 참 비겁하다. “법은 준수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라는 <너목들> 편의점 살인 사건의 쌍둥이 동생 말이 일견 맞는 것도 같아 씁쓸함만 남는다.

오늘도 중독성 강한 노랫말이 내 머릿속에서 놀다가 간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