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에스비에스)
이율배반형
‘출비’ 제목과 달리 출생 비밀 없어
고유명사형
‘내 딸 서영이’ 등 주인공 이름으로
원작탈색형
‘그 겨울, 바람…’처럼 느낌 달라져
‘출비’ 제목과 달리 출생 비밀 없어
고유명사형
‘내 딸 서영이’ 등 주인공 이름으로
원작탈색형
‘그 겨울, 바람…’처럼 느낌 달라져
<출생의 비밀>(에스비에스)에는 ‘출생의 비밀’이 없고, <백년의 유산>(문화방송)에는 ‘백년의 유산’이 없다? 가히 드라마 제목의 ‘배신’이요, ‘이율 배반’이다.
드라마 제목은 보통 작가들이 짓는다. 그러나 마케팅 차원에서 피디·제작사·방송사가 합의해 변경하기도 한다. 주원·문채원·주상욱이 출연해 8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에서 방영 예정인 <그린 메스>는 최근 <굿 닥터>로 바꿨는데, 이유가 “제목이 너무 어려워서”였다.
드라마의 얼굴 구실을 하는 제목은 <쩐의 전쟁>(2007년)처럼 극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가끔씩 역설적이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이 그렇다. 한국방송 단막극 <우연의 남발>(2010년)이 드라마 속 코드인 남발되는 우연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과 정반대다.
<출생의 비밀>에는 연적이 사실은 배다른 자매라거나, 업둥이가 원래 부잣집 아들이라는 식의 통상적인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 코드가 전혀 없다. 엄마(성유리)의 단기기억상실로 지워져버린 해듬이(갈소원)의 탄생의 비밀들이 한꺼풀씩 드러나기는 하지만 출생의 비밀까지는 아니다. “오해가 생긴 출생의 비밀에 본질적으로 다가서겠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였으나 제목으로 인한 오해 때문인지 연기자들의 호연이 돋보이는데도 시청률은 7% 안팎에 불과하다.
<출생의 비밀>과 주말 동시간대에 방송중인 <백년의 유산> 속 ‘백년의 유산’은 삼대째 이어지는 국수공장을 지칭하는데, 드라마의 중심은 국수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출생의 비밀’ 코드가 짙게 깔려 있어 경쟁작인 <출생의 비밀>과 헷갈리기까지 하다.
일일극과 주말연속극 제목은 주로 중장년층을 공략하기 때문에 직접적이고 단순하다. <내 딸 서영이>, <오자룡이 간다>, <삼생이>, <오로라 공주>, <은희>(24일 첫 방송)처럼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제목에 넣는 경우가 많다. 일일극은 매일 방영되는 특징 때문에 주인공이 마치 이웃집 사람인 것 같은 효과를 노린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 제목은 어떨까. 상반기 화제작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2002년)을 리메이크했다. 제목이 확 바뀌면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드라마가 됐다. <파견의 품격>(2007년)은 일본과 한국의 파견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의 신>으로 바뀌었다. 가제목은 <돌아와요 미스김>이었으나, <돌아와요 순애씨>나 <힘내요 미스터김> 등 기존 드라마를 의식해 <직장의 신>으로 바뀌었다. <여왕의 교실>(문화방송)은 <하얀 거탑>(2007년)과 <꽃보다 남자>(2009년)처럼 일본 원작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김영섭 에스비에스 편성전략본부 부국장은 “징크스 때문에 ‘진다’, ‘떨어진다’, ‘죽는다’ 등이 들어간 드라마 제목은 절대 안 짓는다. 단순 서술형 제목도 구체적 이미지가 없으면 안 쓰는데,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예외적이었다”고 했다. 이어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대감을 불어넣어주는 구실을 한다. 그 기대치가 내용과 부합하면 괜찮지만, 기대치에 어긋나면 배신감을 느껴 사람들이 안 보게 된다”면서 제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백년의 유산>(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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