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TV
네살 딸아이는 헬로 키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어느 날은 머리핀부터 옷, 신발, 가방까지 온몸을 헬로 키티로 도배한 적도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리본을 단 머리 큰 하얀 고양이가 좋단다. 늘 웃는 모습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자인 지인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헬로 키티다. 네살 꼬마나 서른살 어른이나 똑같다 싶지만, 지인이 헬로 키티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슬프다. 입이 없어서란다.
헬로 키티를 자세히 보면 입은 아예 없고 양쪽 귀는 쫑긋 세워져 있다. ‘자신의 의견은 강요하지 말되 다른 이의 의견은 경청하라’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1974년 헬로 키티를 탄생시킨 일본 캐릭터 업체는 헬로 키티에 보는 이의 감정을 잘 투영시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말이다.
헬로 키티 이야기가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예계를 보면 헬로 키티처럼 차라리 입이 없었으면 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최근에는 결혼을 앞둔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여러 ‘입’의 희생자가 됐다. 장윤정의 사적인 가족 이야기에 종편 <채널에이>까지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했다. 시청자의 알 권리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연예인의 진흙탕 가족사까지 시시콜콜 궁금한 시청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또 수십년의 세월이 엉켜 있는 가족 안 이야기는 제3자가 절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안이다.
얼마 전에는 <아빠! 어디 가?>(문화방송)에 출연하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여덟살 어린아이의 ‘안티 카페’가 생겨 충격을 줬다. 팬이 있다면 안티 팬 또한 당연히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상이 ‘안티’라는 의미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니 문제다. 다행히 여러 누리꾼들의 노력으로 해당 카페는 폐쇄됐으나 <붕어빵>(에스비에스)에서 깜찍한 모습을 선보인 뒤 연기자로 데뷔한 일곱살 아역 배우의 안티 카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어린아이에게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배설의 욕구를 채우는 것만큼 졸렬한 것도 없는 듯하다. 가수 손호영의 여자친구가 자살했을 때도 실체 없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손호영은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난도질을 당했다.
‘찌라시’로 불리는 연예계 비밀 소식지도 그렇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하긴 동화 속 임금님 귀는 당사자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기라도 했지만, 찌라시 속 소문의 내용은 정체불명, 출처 불명이다. 10개 중 한두개 소문이 맞았다고 해서 나머지 8~9개까지 다 맞는다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고? 어릴 적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 마른 맨흙을 휘저어도 굴뚝은 먼지 같은 것을 토해냈더랬다.
점점 말만 많아지는 사회에 헬로 키티도 끼고 싶은 걸까. 탄생 40년 만에 입이 생긴다고 한다. 일본 디자인 업체가 눈이 좌우 비대칭이고 입까지 있는 21세기형 헬로 키티를 내년부터 선보인다. 시류를 따라갔겠으나, 39년 동안의 지조를 버리고 굳이 입을 그려넣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가뜩이나 최근 사회는 ‘검은 입’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손까지 제2의 입이 된 인터넷 시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김수현)이 자주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물라, 다물라, 그 입 다물라.”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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