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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아이돌에 대한 변명과 항명, 문제는 커튼 뒤에

등록 2010-09-16 09:54

아이돌에 대한 변명과 항명, 문제는 커튼 뒤에
아이돌에 대한 변명과 항명, 문제는 커튼 뒤에
[하니스페셜] 100 비트
이젠 그들에겐 누나와 오빠가 있다

시작은 투피엠(2PM), 아니 재범이었습니다. 마이스페이스에서 한 친구와 주고받았던 대화가 공개된 지난 여름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을 해석하는 어떤 방식에 몹시 불편해하던 때, 이에 관한 원고 지령이 떨어졌죠. 일단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시작은 2PM, 아니 재범

차차 투피엠이 일곱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게 됐으며 어느새 그들이 출연했던 각종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한편 팬덤의 전문용어에 익숙해지면서 각종 청년(또는 소년) 가수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투피엠이 무대를 쉬고 있는 지금까지도 주말 오후 네시 무렵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넋놓고 즐기거나 까칠하게 평가한 뒤, 방송과 무대에 관한 팬들의 후기를 관전하는 시간을 갖죠.

그러다 문득 그들을 가여워하고, 문득 무언가에 분노하는 순간도 함께 찾아옵니다. 사실 이건 모든 팬들의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자, 선수를 가여워하고 구단에 분노하고, 연아를 좋아하는 자, 연아를 가여워하고 빙상의 논리에 분노하죠.

마찬가지로 아이돌의 팬은 스케줄에 허덕이는 청년과 소년에 연민을 느끼고, 이들을 불합리하게 묶고 돌리는 기획사의 방침과 분별없는 미디어에 성토합니다. 자식처럼 애인처럼 그렇게 가수를 아끼던 팬은 어느새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탑재하게 되고, 순박한 두둔과 절박한 호소 이상으로 기업의 운영방식을 읽고 평가하고 강하게 의사를 표출하는 것이죠.

한 예로 지난해 여름 동방신기의 팬클럽 회원들은 소속사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가 불공정 계약서로 동방신기 멤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아우성 넘어 구체적 행동

이는 아이돌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팬덤 역시 비대해지면서, 그리고 지식과 정보를 가진 고연령대 팬층이 증가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투피엠을 ‘추종‘했던’ 이들의 태도 변화야말로 팬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들은 재범의 탈퇴를 두고 처음엔 대대적으로 소속사 제이와이피(JYP)를 공격했죠. 이후 여섯명의 투피엠이 기자회견을 통해 재범을 완전히 내치자 아예 그룹에 등을 돌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아우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력입니다. 투피엠이 십대 지향의 가수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이밖에도 누나팬 혹은 언니팬의 숱한 활약이 있습니다. 일단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죠. 사용하는 장비부터 다릅니다. 이른바 행사장 ‘직찍’과 ‘직캠’에서 드러나는데, 그들은 대포(대형 망원 렌즈)를 들고 뉴스사진 이상의 작품사진을 찍고 방송용에 준하는 고화질 캠코더로 촬영하고 편집합니다.

외국어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진출에 성공한 가수들의 경우, 외국 방송분을 자막 버전으로 제공하는 일도 흔합니다. 봉사활동으로 가수의 이미지를 온화하게 만들거나 팬덤의 조직력을 대변하는 일도 성인팬의 역할이죠. 동방신기, 빅뱅, 더블에스501, 투피엠 등의 팬이 봉사활동 커뮤니티를 만들어 구호가 필요한 세상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닙니다. 소녀시대 팬들의 자원봉사모임인 ‘소원봉사단’은 티파니의 생일을 맞아 모금을 진행하고 티파니의 이름으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했죠.

공정하지 않은 권력

이렇듯 팬덤에는 중요한 어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언니와 누나와 오빠들은(가끔은 형도 있을까요?) 미디어 이상의 컨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회사를 직접 상대하면서까지 가수를 사랑하고 보호하거나 또는 위협하고 외면합니다. 이처럼 성인이 관여한 팬덤 활동의 일화들은 부족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가수 역량에 비해 방송, 언론 등 기성매체의 생산물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누구나 짐작하듯 가수와 소속사 사이에는 공정하지 않은 계약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는 자기만족적인 팬질 이상의, 행동과 실천으로 확장되는 유대와 단결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아이돌은 성인들도 지켜보고 있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누나와 언니와 오빠들을 편으로 둔 존재입니다. 이런 부분을 관계자들이 충분히 고려한다면, 아이돌 시장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해지길 기대해봅니다.

이민희/음악 칼럼니스트


21세기 찰리 채플린이 곳곳에 있다

아이돌에 대한 항명이라니! 사실 이렇게 거창할 것까진 없습니다. 나 역시 아이돌을 좋아하며,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 자리에서 케케묵은 “아이돌 음악은 상업적이다” 논쟁을 불붙이고 싶진 않습니다.

진정성? 누가 평가하나

현대의 대중문화는 모두 산업이며, 자본의 회로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돌 음악만 따로 떼어내어 공격한다는 것은 공평한 처사가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음악 좀 듣던 친구녀석이 일갈하던 “유투가 최고야. 본 조비 같이 상업성에 찌든 그룹이라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자간에 상업성과 비상업성의 전선을 긋게 된 셈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습니다. 그럼 유투의 음악은 상업적이지 않은가요? 그들은 저항을 상품화시켰습니다. 체 게바라가 티셔츠에 프린트되 듯 말이죠. 그들이 지난 3년간 가장 돈을 많이 번 뮤지션으로 지목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맞습니다. 아이돌 음악은 상업적입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부분은 아닙니다. “아이돌 음악은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이른바 엄숙주의 비평의 잣대를 사용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진정성? 누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이것도 패스.

사이보그나 로봇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 음악이 치열한 경쟁구도로 유행주기를 단축시켰으며, 그 때문에 가수와 대중 모두에게 부담감을 안겨줬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본의 속성상 유행은 회전하기 마련이며, 하나가 소비되면 다른 것이 부상하는 것은 명징하죠.

그러나 아이돌 시장은 하나의 상품이 정해진 효용가치를 다 소비하기도 전에 그 수명을 다하도록 강제합니다. 청소년들의 피드백 역시 신속하고 냉정하죠. 한번 등이 돌려지는 순간, 추락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뮤지션들이 스트레스와 각종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겐 애초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아닌 이상 버틸 수 있는 선이 있죠. 그러나 추락을 두려워하는 스타들에겐 그런 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살인적이고 비상식적인 스케줄이 그들을 기다리죠. “하루에 잠 두 시간 잤어요”라는 진담 섞인 말조차도 토크쇼의 유머 소재로 쓰이는 판입니다.

이런 기형적인 사업구조는 인간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감정을 지워 없애죠. 그러니 자율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조종되고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는 거죠. 영화 <모던 타임즈>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21세기의 찰리 채플린은 곳곳에 있습니다.

시스템이 부추긴 변형 종교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소비되는 걸까요?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보세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슈퍼스타였지만, 죽고 나면 모든 게 끝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에 대한 기억들은 너무나 쉽게 사라지고 있고, 조만간 잊힌 자가 될 것입니다. 이는 고인이 된 스타들 모두의 공통점이죠.

우리가 열광했던 것은 스타의 얼굴과 이름이 아니라, 스타가 있던 공간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게 무너지면, 우리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숭배하죠. 시스템은 그것을 부추깁니다. 그것은 변형된 형태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모두 물신주의자들입니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사라지게 될 운명 아닌가요? 커튼 뒤에는 아무 것도 없죠. 그럼에도 우리는 커튼에 대한 환상으로 살아갑니다. 그게 아이돌과 팬들을 이어주는 끈이죠. 사실 문제는 무대 자체에 있습니다. 그걸 깨우치지 않는 한 아이돌에 대한 감정적 비판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항명은 이렇게 시스템에 대한 항명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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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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