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속 여성들 ‘착한 옷’ 벗는다
‘이산’ 정순왕후, ‘8일’ 혜경궁 홍씨 등 적극적 권력욕 드러내…“여성 정치개입 역사적 사실”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라도 동일 인물에 대한 캐릭터 해석은 제각각이다. ‘정조’를 소재로 현재 방영 중인 문화방송 <이산>과 채널 씨지브이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은 정조뿐 아니라 여성 캐릭터의 성격도 확연히 구분된다. 특히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는 과거의 모습과도 사뭇 다르다. 현재 <이산>이 성군의 덕목을 익혀가는 이산(이서진)을 그린다면, <8일>은 정조(김상중)가 사도세자의 사갑연(죽은 뒤 맞는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수원 화성원행을 나가는 시점을 다룬다. 같은 인물이어도 왕이 돼 권력을 쥔 김상중의 카리스마가 이서진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혜경궁 홍씨에 대한 인물 해석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 엇갈린다. <이산>의 혜경궁 홍씨(견미리)는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잃을까봐 마음 졸이는 착한 엄마다. <조선왕조 500년>에서 봤던 비련의 여인 그대로지만 아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다며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 있는 화완옹주(성현아) 세력을 견제하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인다. 반면 <8일>의 혜경궁 홍씨(정애리)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방조하고 노론과 손을 잡아 아들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극중에서 정조가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회고록인 <한중록>에 적었듯 사도세자를 미치광이었다고 정조에게 설명하는 장면과 실제로는 사도세자가 혜경궁 홍씨와 극명하게 대치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과거가 겹치는 장면은 소름이 돋는다. 기억과 기록을 상이하게 풀어놓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왜곡하는 혜경궁 홍씨에 대한 의문은 정조를 암살하려는 무리의 이야기와 함께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학계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조가 숙청한 친정의 복권을 위해 저술했다는 의견도 나온 바 있다. <8일>의 김원석 작가는 “정조는 왕위에 올라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이끈 인물들의 숙청으로 10년을 보냈다”면서 “같은 사건도 다르게 기술된 <조선실록>과 <한중록>을 보고 원작(<원행>)에도 없는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대립을 극에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산>과 <8일>은 역사적으로 노론 벽파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정순왕후에 대한 묘사도 차이를 보인다. <이산>에서 정순왕후(김여진)는 정조를 시해하려는 세력의 우두머리로 주도면밀하게 정조 암살 음모를 꾸민다. <8일>에선 독기를 품었으나 힘을 잃고 노론에 기댄 처지로 나온다. 과거와 달리 혜경궁 홍씨나 정순왕후를 정치적 여성 캐릭터로 그리는 것에 대해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인 신병주씨는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역사 기술에 따른 것”이라면서 “조선 시대 궁중 여성들은 조선 중기를 제외하고, 전기와 후기에는 왕후 정치라 불릴 만큼 정치에 개입해 세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문화방송·채널 시지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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