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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3·1운동 민족대표는 33인 아닌 34인?

등록 2006-02-27 17:36

교육방송 특집다큐 ‘민족대표 34인 석호필’…항일 도운 캐나다인 조명
“기독교 믿기전에 국민에 사죄하라” 이완용 만나 일침 놓기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는 33인이 아니라 34인이었다? 교육방송은 3월 1일 밤 11시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민족대표 34인 석호필>에서 그 동안 알려진 민족대표 33인 외에 또 한 명의 민족대표를 발굴해 소개한다.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 이름 석호필)는 국립묘지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다.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세균학과 교수 겸 선교사로 처음 이 땅을 밟았다. 평소 일본의 식민 통치를 못 마땅해 했던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의 주선으로 3·1운동의 외교부장 역할을 담당한다. 해외 정세를 알려주며 민족자결주의를 33인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에게 카메라는 총이었고, 타자기는 칼이었다. 3·1운동 즈음 역사적인 현장을 사진과 글로 남기고, 영자신문 <서울 프레스>에 기고하면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서 유관순 열사를 만난 것은 물론 전국의 형무소를 돌며 구국열사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당한 잔인한 고문과 수감 상황을 외부에 알렸다. 그는 또 일본 탄압으로 1920년 본국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제암리 사건을 기록해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제암리에서 만난 이완용과의 에피소드도 전한다. 이완용이 “어떻게 하면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자 석호필은 “기독교를 믿으려면 먼저 2천만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1959년 이승만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그는 나머지 삶도 한국을 위해서 후학을 양성하고, 고아들을 돌봤다. 제작진은 서울대 정운찬 총장, 서울대 명예교수 이장락 박사, 기독교청년회(YMCA) 전택부 명예총무들의 인터뷰를 통해 고인의 행적을 기린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동관 프로듀서는 “우리가 모르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싶었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공공기관에서도 비무장, 비폭력 만세운동이 있었던 삼일절과 석호필 박사에 대한 만족할 만한 자료를 찾고 보여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며 “특히 석 박사는 유품으로 지갑과 여권만 남길 정도로 남에게 배풀고 검소한 삶을 살아갔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이 발굴한 외국인 석호필의 모습은 역사의 격변 속에서 다른 민족에게 기꺼이 손내밀었던 근대적 휴머니스트의 자화상이다. 프로그램은 3.1운동 당시의 숨은 공신이 지닌 정신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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