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아이돌 드라마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케이(K)팝을 향한 열기는 뜨겁지만, 아이돌 드라마를 보는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지난달 23일 종영한 <너의 밤이 되어줄게>는 에스비에스가 <메디컬 센터>(2000~2001년 방영) 이후 20년 만에 부활시킨 일요드라마였다. 드라마는 몽유병을 앓고 있는 월드스타 아이돌과 사람들 몰래 이를 치료하는 가짜 주치의가 같은 공간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를 모았다. 유키스 출신 이준영, 뉴이스트 JR(김종현), 워너원 출신 윤지성, 에이비식스 김동현 등 아이돌이 대거 출연했다. 하지만 첫 회 시청률 2.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가 최고 시청률이 됐다. 이후 2~12회는 1.1~1.7%를 오가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너의 밤이 되어줄게> 콘셉트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쓴맛을 본 아이돌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종영한 <아이돌: 더 쿠데타>(제이티비시)도 이엑스아이디 하니(안희연), 우주소녀 엑시(추소정), 라붐 솔빈(안솔빈) 등이 출연하며 캐스팅 단계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는 실패한 걸그룹의 재기 과정을 보여주며 연예계의 현실과 이면을 담은 ‘아이돌판 미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참담했다. 12회 가운데 1%를 넘은 회는 없었다. 방영 내내 ‘0%대 드라마’로 불리며 냉담한 무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종영한 <이미테이션>(한국방송2)은 아이돌 스타와 닮은 주인공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얘기를 다뤘다. 아이돌을 그린 인기 웹툰이 원작이었다. 에이티즈의 윤호(정윤호)·종호(최종호), 산(최산), 성화(박성화), 아이오아이 출신 임나영, 에스에프나인의 휘영(김영균)·찬희(강찬희) 등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뿐만 아니라 지오디 데니안, 베이비복스 심은진 등 시대를 풍미했던 예전 아이돌도 출연했다. 웹툰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드라마는 0.4~1.3%로 낮은 시청률을 보이다 1%대 시청률로 종영했다.
<아이돌: 더 쿠데타> 포스터. 제이티비시 제공
물론 모든 아이돌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한 건 아니다. 2011년 <드림하이>(한국방송2)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스타가 되려는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그려내 화제를 이끌었다. 미쓰에이 출신 수지(배수지), 투피엠의 택연(옥택연)·우영(장우영), 티아라 은정(함은정), 아이유(이지은)가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첫 회 시청률 10.3%로 시작해 마지막 회는 17.2%로 종영했다. 2009년 <미남이시네요>(에스비에스)는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의 정용화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10%가 넘는 시청률로 흥행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선보인 드라마들은 모두 흥행 실적이 초라하다. 이 때문에 ‘아이돌 드라마는 망드(망한 드라마)’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시청률이 드라마 완성도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대중의 관심을 보여주는 잣대여서, 잇단 아이돌 드라마의 흥행 실패를 두고 이런저런 분석이 나온다.
먼저 늦은 시간대 편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너의 밤…> <아이돌…> <이미테이션>은 모두 밤 11시대에 편성됐다. 심야 시간대여서 아이돌 드라마 주 시청자인 10~20대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다. 방송사 역시 아이돌 드라마가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늦은 시간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분석은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확산에 따른 상황 변화다. 한때 아이돌은 신비주의 콘셉트로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요즘 아이돌은 자체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공유한다. 아이돌 일상이 더는 새롭지 않다는 얘기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아이돌 드라마 부진과 관련해 “이제는 아이돌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연출된 상황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돌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는,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춤·노래·경쟁 등을 보여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자주 접하면서, 아이돌이 되는 과정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이란 존재 자체가 매우 밀도 높은 콘텐츠다. 하지만 드라마로 구축된 인물이 그만큼의 밀도를 갖고 팬을 사로잡는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뻔한 스토리가 아닌 차별화한 콘텐츠로 만들어야 아이돌 드라마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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