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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고인돌·둘리 그린 원로 만화가들의 삶, 책으로 엮었다

등록 2021-06-09 09:33수정 2021-06-10 02:52

한국만화가협회,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
원로 만화가 12명 생애사 구술 채록 사업
112년 역사 있지만 기록·연구 부족 지적
시대적 한계 등 어두웠던 면도 가감없이
한국만화가협회가 발간한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 총서 12권.
한국만화가협회가 발간한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 총서 12권.

주먹만한 코에 짧은 팔자수염, 중절모에 양복을 갖춰 입은 똥똥한 체구의 중년 신사 ‘코주부’는 한국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꼽힌다. 만화가 김용환(1912~1998)이 재일동포들의 어려운 삶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이 캐릭터는 해방 뒤 촌철살인을 담은 풍자로 한국에서 맹활약했다. 코주부는 다른 후배 만화가가 바통을 이어받는 ‘집필권 승계’ 캐릭터라는, 흔치 않은 역사도 남겼다. 김용환 추천으로 만화가로 데뷔해 젊은 시절 ‘그림 그리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이원수(1931~2019)가 1988년 민주화 이후 만화계로 복귀한 뒤 “지금도 코주부의 활약이 필요하다”며 김용환으로부터 코주부 캐릭터의 집필권을 승계받았던 것이다. 이후 이원수는 <뉴욕 타임스>가 운영하는 콘텐츠 공동 판매 시스템(신디케이트)에 소속되어 한국 시사만화를 국제 무대로도 진출시키는 등의 활약도 했다.

한국 만화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 사업을 진행해온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는 최근 원로 만화가 12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생애사를 자료로 정리한 단행본 12권(비매품·알렙출판사)을 결과물로 내놨다. 1909년 6월2일 창간한 <대한민보> 1면에 ‘삽화’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이도영(1884~1933)의 한칸 만화는 현대 한국 만화의 첫 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2001년에야 한국만화박물관이 만들어지는 등 112년이 지나도록 한국 만화에 대한 기록과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2019년 별세한 ‘2대 코주부’ 이원수 작가의 원고. 이원수 작가는 2019년 별세했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2019년 별세한 ‘2대 코주부’ 이원수 작가의 원고. 이원수 작가는 2019년 별세했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1993년 김용환 작가가 이원수 작가에게 코주부 캐릭터의 집필권을 주면서 그려준 그림과 두 작가가 함께 찍은 사진.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1993년 김용환 작가가 이원수 작가에게 코주부 캐릭터의 집필권을 주면서 그려준 그림과 두 작가가 함께 찍은 사진.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 총서 사업은 원로 만화가들의 구술을 통해 우리 만화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네이버에서 출연한 만화발전기금을 운영하는 만화발전위원회에서 2016년부터 한국만화가협회를 사업수행자로 결정해 사업을 진행해왔다. 처음엔 만화가, 웹툰 작가들의 창작 노하우를 담는 사업으로 시작했으나, 만화가 주로 실렸던 각종 종이 매체들이 폐지로 사라져버리는 가운데 구체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원로 만화가들의 구술 채록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2017년 2차 사업 때부터 방향을 바꿨다. 박인하, 백정숙, 조익상, 한상정, 홍난지 등 만화 관련 연구자 5명이 권영섭, 김수정, 박기정, 박수동, 서정철, 윤준환, 이원수, 이종진, 전상균, 조항리, 최석중, 하고명 등 12명을 인터뷰해 정리했다. 이 가운데 ‘2대 코주부’ 이원수가 총서가 나오기 전인 2019년 세상을 떠났다.

대체로 1930~40년대생인 원로 작가들의 구술에는 근현대사를 살아온 생애사와 함께 1970~80년대 명랑만화와 만화방의 전성기, ‘꾸러기’, ‘고인돌’, ‘둘리’ 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화 캐릭터들, 열악한 시대적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만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이들의 발자취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순정만화의 기틀을 닦고 한국 만화 산업 발전에 발 벗고 나섰던 권영섭, 캐리커처를 시사만화의 연장선상에 올려놓은 박기정, 애니메이션 산업에도 적극 간여했던 조항리, 자신이 수집해온 자료들로 ‘둥지만화박물관’을 개관해 운영까지 했던 하고명 등 이들의 발자취는 각양각색이다.

’꾸러기’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던 윤준환 작가의 &lt;꾸러기와 맹자&gt; 표지.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꾸러기’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던 윤준환 작가의 <꾸러기와 맹자> 표지.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억지 심의로 칼이 부채로 바뀌어버린 이종진 작가의 &lt;징기스칸&gt; 표지. 지나친 심의와 검열은 한국 만화의 발전을 가로막은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억지 심의로 칼이 부채로 바뀌어버린 이종진 작가의 <징기스칸> 표지. 지나친 심의와 검열은 한국 만화의 발전을 가로막은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70년대 출판된 최석중 작가의 &lt;검은 나&gt;의 표지. 고아이자 혼혈인 호아가 온갖 편견과 어려움을 권투로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70년대 출판된 최석중 작가의 <검은 나>의 표지. 고아이자 혼혈인 호아가 온갖 편견과 어려움을 권투로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물론 역사엔 밝은 면만 있지 않다. 예컨대 <권투왕 땅꼬마> <늑대소년 왕그루> 등의 작품들로 1960년대 만화방에서 인기 작가로 활약했던 이종진은 데뷔 초창기 일본 만화 <철인 28호>를 따라 그렸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이는 저작권, 표절 등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대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화다. 이 밖에 만화가 돈이 되자 인쇄소에서 출발한 출판사들이 ‘합동’이란 연합을 만들어 만화 산업을 독점하고 ‘횡포’를 부렸던 이야기, 직접 출판사를 차리는 등 이에 대항했던 작가들의 이야기, 만화에 대한 심의가 가혹해 단행본 표지에 칼 대신 부채를 든 징기스칸(칭기즈칸)의 모습을 써야 했던 이야기 등도 원로 작가들은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과거 공장식으로 만화를 찍어냈던 탓에 심지어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

‘만화가 휴먼 라이브러리’는 우리 만화와 만화가의 역사를 제대로 남기기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이라 할 만하다. 한국만화가협회는 이를 누리집(cartoon.or.kr)에서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만화가협회는 “만화 역사가 110년이 넘었지만 만화를 공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으며, 전문만화박물관은 한국만화박물관(2001년 개관)과 청강만화역사박물관(2002년 개관) 두곳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많은 작가들의 구술 채록 사업을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애사와 다양한 작가 연구, 만화사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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