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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 없는 엄마에게 쓴 편지, 한부모들 작은 위로가 되길”

등록 2021-05-31 18:13수정 2021-06-01 23:34

[다큐 ‘포겟 미 낫’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인터뷰]
생후 4개월에 해외입양 된 감독
제주의 미혼모시설 머물며 촬영
3일 개봉…차기작은 미혼부 얘기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영화 부제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예요. 이 영화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엄마에게 얘기를 전할 수 있는 평생 유일한 기회였어요. 단 한번의 기회에 엄마에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물론 그 과정은 나를 치유하기도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트라우마를 다시 환기시키기도 했죠.”

지난 5월2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은 상실감으로 시작된 자신의 삶에 대해, 오늘도 반복되는 미혼모들의 이별에 대해 나직이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엄마는 기억나지 않았다. 부산 태생 신선희라는 이름은 리스벳 선희 엥겔스토프로 바뀌었다. 1982년 10월의 일이다.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3일 개봉하는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한 국외입양아가 한국에 돌아와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보다, 39년이 지났음에도 미혼모들이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는 여전한 우리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제주의 미혼모 보호시설인 애서원에 머물면서 촬영했어요. 한국말을 할 줄 몰라 통역의 도움을 받았죠. 놀라운 건 말도 안 통하는데 엄마들의 말이 뉘앙스로 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제가 입양아였다고 하니까, 마음을 열고 아주 내밀한 얘기까지 다 해줬어요. 어찌 보면 엄마와 자식 간의 본능적인 소통이 이런 게 아닐까, 놀라웠죠.”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국립덴마크영화학교 출신인 선희 엥겔스토프 감독은 ‘엄마가 자기 아기를 떠나보내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오랜 질문을 첫 장편 다큐의 모티브로 삼았다. 이는 감독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자, 자신의 본원적 슬픔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 답은 경찰을 통해 딸과의 만남을 원치 않는다고 한 친엄마가 아니라, 애서원의 미혼모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애서원의 엄마들은 미혼부들의 무관심과 가족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아기를 떠나보낸다. 원장을 비롯한 애서원 관계자들의 설득에도 가족은 딸의 장래를 위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가능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가능해졌다.

감독은 상처의 기원을 들여다보면서도 미혼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특히 아이를 위탁가정에 떠나보낸 엄마가 홀로 흐느끼자, 감독이 촬영하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껴안으며 같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이 영화가 미혼모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어린 엄마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랑 같은 관점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처음에 영화 찍을 때는 관찰자로 남으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제 정체성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봤어요. 점차 영화 안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예요.”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미혼부에 대해서도 성숙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던 감독은 차기작으로 미혼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 작품으로 친부가 입양 간 자기 딸을 찾아 덴마크로 가는 이야기를 픽션으로 구상 중이에요.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한국에선 남자나 여자 모두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입양 이후 덴마크에서의 삶에 관해 물으니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생후 4개월하고 이틀이 됐을 때 입양을 갔죠. 양아버지는 빌딩 엔지니어 일을 하던 목수였고, 양어머니는 사회복지사였어요. 코펜하겐 근교의 위성도시에 다른 형제 없이 혼자 자랐어요. 만 3살 때 양부모님 모두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자원봉사를 가면서 저도 거기 캠프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전 운이 좋았죠. 양부모로부터 학대 등을 받은 경우도 많아요. 20만명의 국외입양아 중 10만명이 미국으로, 나머지가 유럽으로 가는데,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학대 사례가 보고됐어요. 일반인에 비해 입양아들의 자살·정신질환·약물중독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런 뉴스가 한국으로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죠.”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다큐 <포겟 미 낫: 엄마에게 쓰는 편지> 스틸컷. 커넥트픽쳐스 제공
“쉽게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없다”고 강조한 그는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국 사회가 이들을 편견 없이 포용해주면 좋겠다”며 “이 영화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한부모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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