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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보다 무서운 인간 욕망과 광기…SF적 우화 ‘보이저스’

등록 2021-05-25 11:15수정 2021-05-25 11:22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은유 담은 SF물 26일 개봉
영화 <보이저스>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영화 <보이저스>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교양의 가면을 벗기면, 자연스러운 사회성이 아니라 도착적이고 가학적인 성격층만이 우세를 점하며 나타나게 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사회심리학자인 빌헬름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간파해낸 것처럼, 인간에겐 누구나 극우적인 욕망이 존재한다. 타인을 지배하고 권위에 기계적으로 복종하고자 하는 이 심리를 제어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교육이다. 교육은 교양의 외피로나마 위선을 가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존속에 기여한다. 그러나 인간이 쓰고 있는 이성의 가면은 부박하고 위태로운 것이어서, 가면 뒤의 늑대는 수시로 이빨을 드러낸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닐 버거 감독의 <보이저스>는 인간의 권력욕과 대중의 광기를 에스에프(SF) 장르로 풀어낸 영화다. 2063년, 지구온난화로 더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미래 세대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인류 이주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80여년을 가야 닿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인류의 식민지로 삼겠다는 것.

영화 &lt;보이저스&gt;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영화 <보이저스>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인공수정을 통해 완벽한 우성 인자로 태어난 30여명의 아이들은, 이들의 훈련을 담당했던 리처드(콜린 파렐)와 함께 우주선 ‘후마니타스호’를 타고 우주로 향한다. 철저하게 격리된 채 오로지 미래 인류의 조상이 될 임무만을 부여받고 머나먼 여정에 오른 아이들은 우주선에서 탐사대원으로 성년을 맞는다.

그러나 젊음은 반항과 무절제의 다른 이름. 어느 날 단짝인 크리스토퍼(타이 셰리던)와 잭(핀 화이트헤드)은 그들이 매일 마시던 ‘블루’가 성욕과 충동을 억제하는 물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잭의 폭로로 인해 기약 없는 항해에 의문을 품던 대원들은 블루의 복용을 거부한다. 그 사이 우주선 외부에서 외계생명체의 것으로 추정되는 괴성이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리처드가 선체 수리 도중 사고로 숨지면서 우주선은 이내 큰 혼란에 빠져든다.

영화 &lt;보이저스&gt;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영화 <보이저스>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지구가 멸망한 뒤의 디스토피아를 생생하게 보여준 전작 <다이버전트>와 달리, 닐 버거 감독은 이번에는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군중심리를 서늘하고도 소름 끼치도록 그려낸다. 아이들만이 남은 우주선에는 디오니소스적인 일탈과 폭력이 횡행하고,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들은 ‘에일리언’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집단광기의 땔감으로 이용한다. 이 모든 악의 기원에는 치정이라는 분노의 밑감정이 자리한다. 우주선의 명칭 후마니타스가 라틴어로 ‘인류’라는 뜻과 함께 ‘인간 본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약탈과 지배로 점철된 인류사의 에스에프적인 우화로 읽힌다.

영화 &lt;보이저스&gt;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영화 <보이저스> 스틸컷.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좋은 사회적 조건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이 가장 깊은 핵심에서 근본적으로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협동적이며, 사랑을 하고 있는 동물,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합리적으로 증오를 표출하는 동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라이히의 말은, 이 영화의 결론과도 겹친다. 영화 <보이저스>는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은유를 담아내는 장르로서 에스에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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