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소설가 김훈은 말했다. 위기는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지만, 그 위기를 탈출할 기회도 역시 인간에게서 온다. 인간은 언제나 지옥이자, 구원이다.
5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하는 범죄스릴러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곤경에 처한 소년에게 다가가 그를 구해내며 마침내 자신도 구원받는, 한 소방대원의 활약을 담은 영화다. 소방대원 한나(앤절리나 졸리)는 산불 진화 현장에서 자신의 판단 착오로 동료와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산불 감시 망루 근무에 배정됐지만 느닷없이 번져오는 사고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한나는 우연히 킬러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소년(핀 리틀)과 조우한다. 회계사였던 소년의 아버지는 권력층의 회계부정 증거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범죄조직에 사살됐고, 소년은 아버지의 당부대로 강을 따라 마을로 도피하다 한나를 만났던 것. 소년의 상황을 알게 된 한나는 그를 구하고자 동행에 나서고, 킬러들은 방화와 살인을 일삼으며 그들을 쫓는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전작 <윈드 리버>(2016)를 통해 할리우드 유명 각본가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테일러 셰리던은 전작처럼 각본·감독을 겸한 이 영화에서 범죄스릴러물의 관습대로 빠른 전개와 긴장감 있는 연출을 선보인다. 동명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뒤 실제 불을 질러 산불을 재현하는 등 사실감 넘치는 영상으로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편집 속에서도 한나와 소년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장면 등 등장인물의 감정변화를 따라가는 시퀀스에 공을 들인 대목은, 이 영화가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4일 언론시사 직후 이뤄진 화상 인터뷰에서 졸리는 산불 장면에 대해 “컴퓨터그래픽(CG)으로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실제 불을 보고 연기할 때 진정성 있는 연기가 가능하다”며 “실제적인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아들 매덕스가 한국 대학에 다니는 등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은 각별한 관심이 가는 나라”라며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 보내고 싶고 한국 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바이 더 씨>(2016) 등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한 졸리는 연출과 연기의 차이에 대해 “연출하면서 스스로 많이 변하고 배웠다”며 “연기할 땐 내 캐릭터만 집중하면 되는데 연출하면서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알게 되니까 더 많은 게 보인다. 제작진의 고충과 감독의 스트레스를 헤아리게 되니까 좀 더 이해심이 많은 배우가 됐다”고 했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화상 인터뷰 장면. 영상 갈무리
촬영 당시 심리적으로 강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졸리는 “한 사람의 생존을 돕는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치유하는 경험을 했다”며 “소년을 구하는 한나의 역할을통해 내적인 강인함을 구축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캐릭터”라고 말했다.
타인을 구하려는 한나의 용기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이 될 것으로 본다는 그는 “자기 생명을 희생하면서도 남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상기하면 좋겠다”며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