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종영 인터뷰 안 하고 21부 촬영하면 안 될까요? 떠나보내기 싫어요.”
20부작 드라마 <빈센조>(tvN)가 종영한 다음날인 3일 오전 화상으로 만난 송중기는 아직 ‘빈센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했다. “현장에서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드라마에서처럼 금가프라자 식구인 배우들과 깊은 결속력이 생겼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촬영했어요. 지금껏 가장 신나고 재미있게 연기했어요.”
어릴 때 이탈리아로 입양됐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금가프라자 사람들에게서 가족의 정을 느꼈던 것처럼, 송중기도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함께하며 협업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던 코미디 연기를 금가프라자 식구들한테서 배웠단다. “시청자들이 제 코미디 연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컸었는데, 코믹한 장면일수록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걸 이항나(분식점 사장), 최덕문(세탁소 사장) 등 프라자 식구들의 연기를 보며 많이 배웠죠.”
2008년 영화 <쌍화점>으로 데뷔한 이후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2012년 영화 <늑대소년>,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으로 때가 되면 한번씩 ‘송중기의 해’를 만들었지만, 그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런 겸손이 그를 성장하게 한 비결이다.
2021년엔 <빈센조>로 코미디까지 가능한, 더 깊은 배우가 됐다. <빈센조>에서 그는 지금껏 보여준 다양한 매력을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극과 극을 오가는 변화가 <빈센조>에서 제대로 빛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송중기는 미소년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분노에 한껏 일그러진 얼굴을 하는 순간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다”고 표현했다.
‘빈센조’는 여느 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극악무도하다. 그들이 힘을 모아 물리쳐야 하는 악의 세력인 재벌 회장만큼이나 잔인하다. “악이 악을 물리친다”는 대사가 드라마 내내 등장한다. 2일 방영한 마지막회에서 장준우(옥택연) 바벨 회장과 최명희(김여진) 변호사를 잔인하게 죽인다. 송중기는 “나도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극악무도한 인물인지 몰라서 연기 톤 등 캐릭터를 잘못 잡았다. 중반 지나면서 살도 빼는 등 접근 기준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사적 복수를 통쾌하게 여기며 ‘다크 히어로’에 열광했다. “저도 좀 혼란스러웠어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엄청나게 하고도 시청자들을 설득시켰으니까요. 저는 혼란스러워도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꼈다면 상업드라마로서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해요. 결말에 만족하지만 ‘히어로’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아요. 빈센조가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어젯밤 뉴스만 봐도 나쁜 사람들 많이 나오던데, 그래서 사람들이 사적 복수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쾌감을 느낄수록 슬픈 현실이다. 코미디가 강해 밝은 드라마로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어둡고 슬픈 드라마라고 생각했다”며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처벌하는 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시청자들이 잔인한 복수를 받아들인 데는 송중기의 몰입감 있는 연기도 한몫했다. 진지함과 코믹함을 어색함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어려운 연기를 그는 해냈다. 특히 16회에서 엄마가 죽은 뒤 분노하는 눈빛은 송중기의 깊어진 얼굴을 보여준다. 인생이 무르익어서일까.“배우가 결이 맞는 작가와 감독을 만났을 때 나도 몰랐던 것들이 나온다는 것, 그게 정말 큰 행운이라는 걸 느꼈어요.”
8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려왔지만, 그는 곧바로 또 달린다. 이달 말부터 영화 <보고타> 촬영에 들어간다. 1990년대 콜롬비아로 이민을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촬영이 중단됐었다. “좌우명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이다”라는 그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또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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